문제 들여다보고 본질 알아야 반복 안돼
코로나19 사태, 넓은 시각으로 공부하자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랫말 일부다. 중차대한 시국에 노래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노래는 많은 사람의 위로 코드다. 인간은 '시절의 의미를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는 뜻이다. 누구나 다 거치는 시간이든, 자신만의 특별한 사건이든 마찬가지다. 겪고 있을 때는 모른다. 이게 사는 건가.

전 세계가,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의 정중앙에 있다. 다행히 우왕좌왕하던 시기를 넘어 적응(?)해가고 있다. 국민이 하루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싸우고 버틴다. 와중에 여전히 상급 공무원은 말과 행동으로 실수를 이어간다. 숨 쉴 만하면 단체 확진자를 만드는 어이없는 무리의 행동에 울화가 곱으로 치밀기도 한다. 물론, 그런 감정을 상쇄시키는 장면도 만난다. 얼굴에 반창고투성이인 채로 '우리는 괜찮습니다'를 연발하는 의료인을 본다. 그들도 같은 인간인데, 과연 직업윤리로만 저럴 수 있을까. 지체장애인 청년이 일터에서 받은 마스크를 모아 경찰서 앞에 놓고 재빨리 달아난다. 기초생활자 할머니가 직접 만든 마스크와 생때같은 돈을 두고 가신다. 울고 웃으며 살아내고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큰일만 있으면 금딱지를 모으고, 돼지 저금통을 뜯고 힘을 합치던 국민성 덕택에, 이 난국도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우리는 왜 늘 겪고 나서 한참 뒤에야 문제의 본질을 생각할까. 그러다 보니 꼼꼼하게 대비하는 힘이 적다. 한두 번 겪고 나면, 비슷한 일은 두려워하지 않고, 겪지 않고도 해결의 길을 알 수 있어야 정석 아닌가. 문제가 터지면, 지난한 과정을 그저 묵묵히 참아내고 겪어내지만 말고, 초기에 들여다보고 그 본질을 잡아채야 하지 않을까. 우리처럼 크고 작은 환란을 많이 겪은 국민은 분명히 그럴 자격과 힘이 있다.

강도를 높여 다가오는 놈들은 착하게 겪어내기만 하면 지친다. 특히 마음의 면역력이 쉽게 떨어진다. 몸의 면역력과 코로나19 같은 놈들에 대처하는 설명서는 질병본부에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각자 마음 관리 설명서를 만들어야 한다. 미리미리 꼼꼼하게 시뮬레이션해 봐야 할 일이라, 지금부터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겠다. 코로나19 이후 찾아올 후유증에 대비해서 더 그렇다. 초유의 경제전쟁과 숨어서 기다릴 변종 바이러스 전쟁 등이다.

우선 이 사태를 한 발짝 떨어져서, 한 층위 높은 곳에서 관찰하자. 시간 순서대로가 아니라, 비슷한 사건들을 겹쳐 생각해보자. 애정과 시간을 들이다 보면 본질이 보일 것이다. 또한 이 재앙을 공부라고 여기면 어떨까. 학교도 못 가고 여럿이 토론도 못 하는 판에 제대로 배울 곳은 코로나19뿐이지 않나.

끝으로 상황에 대한 감정을 삼키지만 말고 뱉어야 한다. 묵묵히 참아내기만 한 마음은 상황 종료 이후 비뚤어져 삐져 나가기 쉬우니까. 문화예술, 제대로 된 영성작업이 도와줄 것이라 기대한다.

삶 속 사건들이 우리의 운명을 순간순간 새롭게 결정짓는 것을 우리가 다 알아채고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대하면, 안에서 겪기만 해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눈과 그 설명서는 가질 수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이다. 노랫말처럼 젊은 날이건, 사랑이건, 혹은 재앙의 본질이건, 지나고 나서야 아는 건, 항상 때늦다. 지금 알아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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