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 다섯색은 오행사상과 연관…흙 물 쇠 나무 불 가리켜
목조건물 비바람 피해 예방 효과…벽화 칠기 장신구 등 광범위 사용
영지 감꼭지 연꽃 등 다양한 문양…조선시대 건물별 단청도 5개 등급

집을 이토록 화려하게 꾸미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가 제일일 것이다. 단청(丹靑)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단청엔 오방색이 기본이다.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 이 다섯 가지 색,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오광대. 경남지역의 탈놀음인 오광대에 등장하는 오방신장이 이 다섯 색을 띤다. 황은 가운데요, 청은 동, 백은 서, 적은 남, 흑은 북쪽을 가리킨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은 이 다섯 색깔은 오행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오행이 무엇인가. 우주와 온 세상이 운행하는 원리를 이르는 말이지 않은가. 세상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즉 흙, 물, 쇠, 나무, 불. 이것은 일주일을 이루는 요일과도 연결된다. 태양(일)과 달(월)을 뺀, 화, 수, 목, 금, 토. 이러한 오묘한 사상이 깃든 건축 문화가 단청이다.

이뿐만 아니라 단청은 목조건물을 비바람이나 병해충으로부터 보호해 오래 보존할 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실용적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럼 목조건축물에만 단청이 쓰였냐면 그것도 아니다. 단청의 쓰임은 다양하다. 고분이나 동굴의 벽화, 칠기, 공예품, 조각상,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 단청이 화려한 사천 백천사 풍경. /정현수 기자
▲ 단청이 화려한 사천 백천사 풍경. /정현수 기자

◇왜 단청(丹靑)이라고 했을까? = 한자로 붉을 단, 푸를 청. 두 가지 색 외에도 수많은 색이 있는데 하필 두 색상만 따와서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헌에 보면 단청을 이르는 다양한 단어가 있다. 단확·단벽(丹碧)·단록(丹綠)·진채(眞彩)·당채(唐彩)·오채(五彩)·화채·단칠(丹漆). 이렇게 많은 표기 중에 왜 하필 단청일까?

유래를 찾을 수는 없으나 '단확'과 '단록(丹綠)'에서 단청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겠다. '단확'은 '단사(丹砂)'와 '청확'의 합성어다. 즉 붉은 모래와 푸른 돌을 재료로 썼던 데서 유래한다. 이게 '단확'이라는 말 대신 '단청'으로 쓰였음 직하다는 얘기다. 또 '단록(丹綠)'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단청기법으로 '하단상록(下丹上綠)'의 원칙을 지켰는데 이 말에서 녹(綠) 대신 청(靑)을 넣어 단청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단청의 역사와 기록들 = 단청은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려졌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가장 오래된 단청 유물은 중국 서한 시대 묘에서 출토된 가옥형 토기라고 한다. 여기에 색을 입힌 게 고대 단청의 흔적이라고. 우리나라에선 고구려 357년, 고국원왕 때 조성된 황해도 안악 3호분 석실 벽면과 천장에 각종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대략 그 시대 이전부터 단청이 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표적인 전통 단청의 형태를 띤 통도사 관음전 외부. /정현수 기자
▲ 대표적인 전통 단청의 형태를 띤 통도사 관음전 외부. /정현수 기자

단청에 관한 기록 중에 유명한 건 아무래도 솔거의 황룡사 소나무가 아닐까 싶다. <삼국사기> 권48 '열전'8 솔거 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가 가끔 그것을 보고 날아들었다가 와서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떨어지곤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색이 바래자 절의 승려가 단청으로 보수하였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다시 오지 않았다."

<삼국사기> 권33 '잡지'2 옥사편에는 또 이런 내용이 전한다. "진골은 금·은·유석·오채로써 꾸미지 못하고 6두품은 금·은·유석·백랍·오채로써 꾸미지 못한다. 5두품은 금·은·유석·동랍·오채로써 꾸미지 못하고 4두품 이하 백성까지는 금·은·유석·동랍으로 장식할 수 없다." 색을 칠함에도 신분 차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단청에도 등급이 있다? = 조선 시대까지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등급을 정했다. 5등급으로 나눴다. 제일 낮은 5등급은 가칠단청이라 하고 4등급은 긋기단청, 3등급 모로단청, 2등급 얼금단청, 그리고 제일 높은 1등급은 금단청이다. 단층의 등급을 좀 더 세밀화하기도 하는데 4등급에 모로긋기단청을 추가하거나 2등급에 금모로단청, 1등급에 갖은금단청을 넣기도 한다. 갖은금단청은 금단청 중에서도 문양을 더 세밀하게 그리거나 색을 더 화려하게 입힌 것을 말한다.

▲ 보상화문. /정현수 기자
▲ 보상화문. /정현수 기자

△가칠단청: 건물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목재의 영구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단청이다. 그래서 색상이 거의 한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긋기단청: 가칠단청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바탕칠 후 간단한 문양을 넣는 양식이다. 문양은 부연이나 서까래 등의 마구리(끝면)에 넣는다. 주로 사찰의 요사채나 향교와 서원의 부속건물에 많이 나타난다.

△모로단청: 머리단청이라고도 한다. 마구리 문양에 더해 목재의 끝에 머리초 문양을 장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얼금단청: 이는 금단청과 모로단청의 절충형이다. 얼금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금문이나 당초문을 얼기설기 그려 넣은 데서 유래한다. 이 단청은 주로 사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단청: 최고 등급의 장엄한 양식인데, 명칭에 비단 금(錦) 자를 붙인 이유가 비단에 수를 놓듯 복잡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로 장식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단에 쓰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 고리금과 십자금. /정현수 기자
▲ 고리금과 십자금. /정현수 기자

◇단청에 쓰이는 문양엔 어떤 게 있나? = 단청의 문양은 한 채의 건물에서도 각 부재와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하며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정연한 질서와 일정한 방식이 있어 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목조건물 추녀와 서까래, 부연, 도리, 창방과 평방, 우물반자 그리고 대들보 등을 유심히 보면 몇 가지 기본 문양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추녀에는 주로 원형 고리가 연결된 듯한 고리금, 십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십자금, 곡선이 한 방향으로 연속된 사이에 녹색 꽃을 그려 넣은 녹화결련금, 고리가 연속되는 사이에 줏대(막대)로 연결하고 고리 안에 주황색 꽃을 장식한 주화줏대고리금 등이 장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양이 있다. △여의두문: 영지버섯 형상 △파련머리초: 꽃잎이 버선코처럼 말려들어 있는 연꽃 모양 △주화머리초: 붉은색의 감꼭지 무늬 △보상화문: 연꽃과 상상의 넝쿨무늬 좌우 대칭 형태 △연화장구머리초: 연꽃 문양 위 노란 석류, 그 위에 항아리 문양 △곱팽이: 물의 소용돌이, 회오리바람, 조개 나선형 문양, 고사릿과 식물 곱팽이 등 이미지를 도안한 문양 등.

▲ 우물반자에 새겨진 문양.  /정현수 기자
▲ 우물반자에 새겨진 문양. /정현수 기자

◇단청 작업에 필요한 것들 = 아교, 타분 주머니, 달로(타래), 장척(긴 자), 안료(물감), 막자, 타침(도안 선을 따라 구멍을 내는 침), 솜방망이, 붓, 초첩(밑 작업용 도안집) 등이다.

단청의 원료인 안료는 원래 진채(眞彩) 또는 석채(石彩)라 하여 광물질(무기염류) 색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안료는 값도 비싸고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대체로 화학적으로 제조된 안료를 사용한다. 화학안료는 인체에 해롭지만, 방충, 방습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색이 다양하고 선명하여 고운 빛깔을 내는 장점이 있다.

※참고 자료: 2017년 9월 창원역사민속관 단청기획전

▲ 추녀에 새겨진 단청 문양. /정현수 기자
▲ 추녀에 새겨진 단청 문양. /정현수 기자
▲ 주화머리초.  /정현수 기자
▲ 주화머리초. /정현수 기자
▲ 파련머리초. /정현수 기자
▲ 파련머리초. /정현수 기자
▲ 연화문.  /정현수 기자
▲ 연화문. /정현수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