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성 탓 '악마에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로 몰린 작곡가 파가니니
악마 향한 금자 씨 복수의 길에 그의 작품 '24개의 카프리치오'가 흐른다

관중석으로부터 시작된 바이올린 선율, 그는 자신을 보러 온 관객들을 가로 지나며 신들린 듯 익숙한 선율을 뽑아낸다. 이미 사람들은 악마가 내는 선율에 빠져 들었으며 소녀 팬들은 그와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며 자지러진다. 이윽고 무대 위를 정복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그는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 나가고 한번씩 악상이 변할 때마다 이제 그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관객들은 동조하듯 맞춰 웃고 열광하는 것이다. 지휘자는 그의 속주가 버거워 이마를 진땀으로 채우고 그나마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을 악장은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그를 바라보며 '사람이 맞는지' 놀라워할 뿐이다.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이제 그를 향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데 그것은 그가 뿜어냈던 바이올린 소리의 열기만큼 강렬한 것이다.

이는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2013)의 한 콘서트회장 장면이다. 시대 고증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면 현대의 '아이돌(Idol)'과 '팬덤(Fandom)' 관계가 그 시절에도 존재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장면에서 사용된 곡은 바로 '24개의 카프리치오 중 24번',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대미 <친절한 금자씨>에서 간헐적으로 흘러 나와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바로 그 곡인 것이다.

영화 포스터의 카피처럼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아니 13년전부터. 아동유괴 및 살해로 13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금자(이영애)', 이제 그녀는 수감생활 중 알게 된 이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그들은 그녀를 은인으로 대하며 복수를 돕는다. 여러 사정으로 감옥에서 어려움을 겪던 그들의 고충을 하나씩 그리고 은밀히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그녀는 '친절한 금자씨'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복수를 완성하기 위한 철저히 준비된 단계일 뿐이다. 이제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된 듯한 상황,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먼저 오스트리아에 입양된 딸을 찾아간 금자, 어린 시절 백 선생과의 실수로 얻었지만 한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딸. 그 옛날 그 딸을 볼모로 백 선생은 잔인하게도 '금자'로 하여금 모든 유괴 살인죄를 뒤집어 쓰도록 했던 것이다. 이제 딸과 함께 돌아온 금자는 차근히 계획을 실행해 나가고 막판 들통이 나 위험한 순간을 맞지만 마침내 그를 수중에 넣는 데 성공한다. 정신을 잃은 그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가위로 미친 듯 자르던 모습은 이렇게라도 신체적 훼손을 주고픈 그녀의 광기 어린 복수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복수를 완결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에게 희생된 또 다른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아이들의 부모들을 수소문하여 모으고 이제 그곳에서 절대 악이라 할 그를 어떻게 단죄할지 재판이 시작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그 이야기의 비극성만큼이나 서슬 퍼런 음악으로 가득하다. 주인공 금자가 누군가와 대면하는 장면, 그리고 그녀의 미모에 반해 버린 '근식'과 자신의 방에서 정사를 나누기 전 등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 익숙한 선율은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니콜로 파가니니 (Niccolo Paganini)'의 '24개의 카프리치오(24 Caprices for Violin)' 중 24번 A장조.

▲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 한 장면. 영화는 그 이야기의 비극성만큼이나 서슬 퍼런 음악으로 가득하다. 그중 여러 장면에서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니콜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치오 중 24번 A장조'가 흐른다. /스틸컷
▲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 한 장면. 영화는 그 이야기의 비극성만큼이나 서슬 퍼런 음악으로 가득하다. 그중 여러 장면에서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니콜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치오 중 24번 A장조'가 흐른다. /스틸컷

1782년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난 작곡가 파가니니는 어려서부터 그 재능이 놀라웠다. 타고난 재능에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 괴물이 되어버린 그는 14살에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후 유럽전역을 떠돌며 연주여행을 시작한 파가니니는 등장하는 모든 곳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는데 이는 그가 바이올린을 드는 순간 모두가 홀린 듯 빠져들고 마는 마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무리한 일정은 결국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몸은 망가져만 간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조국, 그는 투병 끝에 아들만이 곁을 지키는 가운데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만다.

한 작곡가를 소개함에 있어 작품세계라든지 음악관을 이야기해야 함에도 그를 언급할 때엔 주로 그의 악마적 기교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며 또한 관심사인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가 지녔던 신기에 가까운 기량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일화로 '그 정도였구나' 감탄하게 한다면 충분히 그 역할은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뛰어난 기교를 지녔기에 가진 재주로 사람을 현혹한다는 박한 평가를 받는 파가니니. 악보를 거꾸로 놓고 연주하기, 각종 동물들의 소리 내기, 나뭇가지로 연주하기 등 그가 연주회장에서 보였던 파격적인 행각들에 관한 일화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그의 연주를 듣다 기절했으며 줄 하나로만 연주할 곡을 만들자 그가 살해한 애인의 창자를 꼬아 만든 줄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니 교회에서는 노골적으로 그를 악마로 치부해 적대시하는 세력마저 등장하였는데 심지어 지성의 결정체이라 할 시인 하이네마저 그의 발치에 묶인 쇠사슬과 그를 움직이는 악마를 보았다고 할 지경인 것이다.

▲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 한 장면. /스틸컷
▲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 한 장면. /스틸컷

이러한 괴소문들이 생겨난 데는 마르고 긴 체구에 튀어 나온 광대뼈와 매부리코였던 그의 특이한 외모도 일조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정도 표현이 아니라면 그의 초인적인 기교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기교에 관하여 조금은 이성적으로 접근한 표현이라면 '그의 연주를 듣지 못한 이들에게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무감각한 철자와 죽은 단어의 나열일 뿐이다'라는 당시의 한 신문기사를 들 수 있는데 이 역시도 상당히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파가니니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정복해야 할 산으로 남겨 놓은 작품이 바로 '24개의 카프리치오(24 Caprices for Violin)'이다.

카프리치오란 '짧고 자유로운 형식의 역동적 소품'을 뜻하는 것으로 흔히 '기상(奇想)곡'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작곡가 파가니니는 각기 다른 기교가 요구되는 24곡을 테크닉을 위한 연습곡처럼 남긴 것이다.

하니 얼마나 어려울까 궁금해지며 두렵기까지 한 대목이며 피아노의 '리스트'에게 '초절기교 연습곡'이 있다면 바이올린의 파가니니에게 이 곡이 있다 하겠다.

그리고 이 중 가장 유명하며 영화에 등장했던 곡이 바로 24번 마지막 카프리치오로 처음의 짧은 테마와 11개의 변주, 그리고 피날레로 이어지는 형식을 지닌 곡으로 튕기다 긁다가, 이어지다 끊어지며, 흐느끼다 갑자기 격정에 휩싸이는 등 강렬한 인상으로 사람의 혼을 기어코 뺏어 놓는 제목만큼 기이한 곡인 것이다.

▲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자, 이제 그를 둘러싼 괴이한 소문들로 인해 생긴 슬픈 이야기가 남았다. 평생을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란 오명을 안고 살아 온 파가니니, 터무니없어 보이는 소문이 이젠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져 그의 시신이 36년 동안이나 자리를 잡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는데, 죽음을 앞둔 파가니니가 고해성사를 들으러 온 사제의 다그침에 자신의 바이올린을 향해 '이 속에 악마가 들어 있소'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이제 소문은 사실이 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던 교회의 조종은 멈추었으며 고향 제노바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은 교회의 매몰찬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그렇게 오랫동안 안식을 얻지 못하던 시신은 그의 아들의 힘겨운 노력으로 36년이 지나고서야 대지의 품 안에 묻힐 수 있게 되는데 잘못되고 과장된 소문이 어떻게 한 사람의 생과 영혼을 파괴해 나가는지를 보여 주는 듯하여 안쓰러우며 현재에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두려운 것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는 파가니니의 곡 외 작곡가 '비발디(Vivaldi)' 작품이 5곡이나 등장하며 장면을 이끌어 간다. 일면 다정해 보이는 그의 곡들이 영화와 만나 빚어 내는 긴장감이 놀라우니 찾아 들어보기를 권하며 특히 금자가 딸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하얀 눈을 맞으며 이처럼 살자던 그들의 모습 뒤로 흐르던 조르디 사발(Jordi Savall 1941∼)의 자장가 '엄마, 엄마, 날 울리지 말아요(Mareta, mareta no'm faces plorar)'는 새로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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