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만 강조할 때 배 불린 건 '가진 사람'
이젠 타인 배려하는 시민 얘기를 하련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Bill Clinton) 후보가 조지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후보 재선을 막은 구호로 널리 알려졌다.

느낌은 다르지만 국내형 서술도 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년)에서 인민군 장교와 동막골 촌장이 나누는 대화다.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뭐를 마이 멕이지."

개혁, 정의, 환경, 복지? 일단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니? 구호는 지극히 단순했고 쉽게 먹혔다. 2007년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2000선을 넘은 해다. 시장에서 덩치를 키운 숫자가 가계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사회는 경제 또 경제 그리고 경제를 반복했다.

그해 12월 어쩐지 기업 키우는 것처럼 나라 살림을 불릴 듯한 대선 후보는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임기 내내 나라 살림을 키웠다며 떵떵거리던 그가 정작 골몰한 것은 제 살림이었다. 법원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그에게 징역 17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8000여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아직도 값을 매긴 죄가 상당히 작다고 여기는 이들이 꽤 많다.

그래도 경제 또 경제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무지막지한 돈 풀기 정책은 '초이노믹스'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얻었다. 2014년 발표한 정책은 1년 반 만에 가계부채를 170조 원 이상 늘렸다. 결과적으로 배를 불린 계층은 부동산 부자였다. 집은 있지만 빚 때문에 거지와 다름없는 이들에게 붙인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처지와 견주면 아주 사치스러운 별칭으로 남았다.

또 경제 이야기를 하자. 2018년 26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 지수는 1700선까지 미끄러졌다. 무슨 소비가 얼마나 줄었는지 휘발유 가격은 7주째 하락이다. 며칠 만에 단체 손님을 받은 식당 종업원은 오히려 당황하며 어수선하게 상을 차린다. 내릴 때까지 손님 타령에 나라 욕하던 택시 기사는 고작 거스름돈 300원을 받지 않으니 고마워서 절절맨다. 웬만한 수치를 다 가져다 붙여도 요즘만큼 돈이 돌지 않을 때가 없을 테다. 경제 말아먹는 정부 나무라기에 참 좋을 때 아닌가.

계속 경제 이야기나 할까? 아니, 역시 경제는 자기만 살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국회의원 후보들이나 말하는 게 좋겠다.

그나마 안전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 아직은 혼자 살겠다고 생필품을 사재기하지 않을 정도로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그래서 신뢰를 유지하는 사회, 이 와중에 자기보다 다른 사람 일상을 더 챙겨보겠다고 나서는 시민 얘기나 좀 더 찾아야겠다.

바보야, 아직도 경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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