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수용하는 자와 비난만 하는 자
공동체 살리는 건 개선·치유하려는 자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대구에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질 때였다. 오랜 친분을 둔 후배가 자기가 농사지은 고구마를 200상자나 대구로 보낼 때 보게 된 현상도 그렇다.

대구에 사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주소를 확인하는데 반응이 딱 세 부류였다. 공짜라니까 반가워서 얼른 주소를 찍어 보내는 사람은 평균적인 반응에 속한다. 식구가 많다면서 두 상자 달라는 사람, 자기 친구 주소를 보내도 되냐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만하다.

그런데 좀 특이한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고맙다면서 택배비 정도는 자기가 내겠으니 착불로 부치라거나 송금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분 문자를 보고 나는 후배의 고구마 택배비 모금에 나섰고 100만 원 넘게 돈이 모였다(https://c11.kr/dyfr).

그 후배도 알고 보니 옆집 고구마 농가에서 대구에 고구마를 보낸다기에 다짜고짜 자기 고구마 창고도 개방했던 거였다.

오래전부터 참여하면서 지금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국 아난다마르가 명상요가 협회'의 사례도 엇비슷하다.

전북 완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명상 단체에서 대구를 돕자며 모금을 시작했다. 그러자 대구에서 시민활동을 하던 회원이 발 벗고 나섰다. 매일 대구 상황을 알려왔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사회의 취약계층 중심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행정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나 홀로 사는 노인 등 사회적 약자 중심으로 집집이 방문하여 의료용품과 먹거리를 나눠주었다.

회원들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의료용과 일반용 마스크를 1000장씩 사서 대구로 보냈다. 활력있는 음식인 채식으로 도시락을 만들고 과일도 매일 나눴다. 한 회원은 현미 떡을 해서 대구로 싣고 갔다.

언론이나 사회적 소통망(SNS)에서는 코로나19 사태의 현황과 분석, 대응책도 많았지만 대체로 갈등과 두려움을 증폭하는 비판 기사와 그런 상대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특히 보수 언론들은 자신의 전날 주장과도 상충되는 논리로 정부 욕하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난다마르가'의 대외 모금팀장을 맡다 보니 대구에 고구마 보낼 때와 비슷했다. 모금 취지와 대구에서의 활동을 보고 바로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았다. 계좌번호도 안 묻고 토스나 카카오페이로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바쁜데 딱 마스크 한 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종횡무진하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격려 문자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어 큰 힘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하는 대구 지원 활동에 참여 중이라면서 힘 모아 코로나를 이기자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대외 모금액만 180여만 원이다. 아난다마르가를 통해 대구로 보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호민론이 떠오른다. '묻지 마 복종'과 '묻지 마 준법'만 강조하는 사람을 항민(恒民)이라고 했고, 허구한 날 불평과 불만, 비난만 일삼는 사람을 원민(怨民)이라 했다. 그러고는 호민(豪民)이 있다. 재난과 위기를 맞아 공동체를 복원하는 기회로 여기고 팔 걷고 개선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비난과 불평보다 고통을 치유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호민이 나서면 항민과 원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허균은 설파했다.

호민만이 아니라 호언론(豪言論), 호정치(豪政治), 호교육(豪敎育), 호의료(豪醫療)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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