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상처·질병 약자들에게 더 많아
의료술보다 공동체가 질병 극복에 영향

'2020년 지구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PFOA(Perfluorooctanoic Acid), 인류의 99%는 이미 중독돼 있다.'

퇴근 후 무작정 시간에 맞는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본 <다크 워터스>의 마지막 대사다. 대기업 변호를 담당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 롭 빌럿(실명·배우 마크 러팔로)이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PFOA) 유출 사실을 폭로하는 영화는 꽤 깊은 울림을 줬다.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는 영화에 등장하는 환경오염 물질 PFOA의 다른 이름인 C8(탄소 8개가 체인처럼 연결돼 분해되지 않는 물질이란 뜻)처럼 분해되지 않는 사회적 상처와 사회적 질병을 계속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잉태된 사회적 상처와 질병들은 부지불식간에 사회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특히 상처나 질병이란 존재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분포돼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확산 요체로 드러난 신천지교회의 사회적 구조도 사회적 상처와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을 가족이나 사회, 공동체가 방관한 점을 악용한 정신적인 'C8'이다.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김승섭 고려대 대학원 보건과학과 교수는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읽고,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건강을 연구한 결과를 담아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책을 썼다. 그는 "흡연과 벤젠 노출처럼,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 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가설을 탐구한다"면서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실업과 재취업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나라는 해고로 고통받다 자살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경제 위기 때 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사회는 치료가 어렵지 않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명백한 증거조차도 무력하게 만드는 듀폰의 권력과 꼼수에도 롭 빌럿 변호사는 20년간 끈질긴 추적 끝에 지난 2017년, 듀폰을 상대로 총 8000억 원 배상금 판결을 받아냈다. 그는 듀폰 외에도 3M, 케무어스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2020년 현재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키우던 젖소 190마리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꼼꼼히 기록한 웨스트버지니아 시골 농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경남에서도 765㎸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시 상동면 도곡마을에서 유일하게 한국전력과 합의를 거부한 고(故) 김말해 할머니가 없었다면 사회적 상처와 질병은 기록될 수 없었으며, 상처와 질병의 사회적 책임도 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 교수가 책에서 사례로 든 '사회공동체가 붕괴되면 사회적 질병이 증가한다'는 논문 결과가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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