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빨간 기와집 가족들〉 〈장롱이야기〉
평범한 삶의 위대함 일깨워

결국 묵묵한 일상이 아픔을 극복하게 한다. 위기일수록 더욱 단단히 일상의 고삐를 틀어쥐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건네받은 수필집 두 권을 읽으며 평범한 일생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의 삶이 특별하지 않았다 해도 힘든 일이 없었을 리가 없다. 그저 묵묵히 쌓아온 일상들이 삶의 버팀목이 되는 이야기들이 여기 있다.

▲ <빨간 기와집 가족들> 서영수 지음
▲ <빨간 기와집 가족들> 서영수 지음

◇마산 봉오재를 기억하십니까

<빨간 기와집 가족들>(수우당, 2019년 5월)은 서영수(59) 수필가의 수필집이다.

책 1장엔 어린 시절 살던 봉오재 풍경이 담겨 있다. 봉오재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사거리 주변을 이른다. 지금은 임항선 그린웨이가 끝나는 석전사거리 철교 아래에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다.

"봉오재.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고개지만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과 석전동의 경계에 있는 석전사거리라고 말한다면 모를 사람이 없다. 그 옛날에는 대구나 진주, 함안 등지에서 마산으로 넘어오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삐거덕거리던 달구지의 길, 등짐 진 보부상의 고개가 전설처럼 아련하다." (15쪽)

고갯마루에 무심한 주인이 막걸리를 내주던 선술집, 아이들 놀이터 노릇을 했던 봉국사 절 마당 색동 깃발을 두르고 있던 신령스러운 당산나무 등 그가 그리는 풍경이 눈앞에 있는 듯 정겹다.

저자는 마산 무학여고에서 음악교사를 오래했고, 교감으로 퇴임했다. 그리고 낚시를 무척 좋아한다. 평생을 음악과 낚시와 함께하며 얻은 잔잔한 깨달음에서 그의 사람됨은 잘 드러난다.

"나의 삶이 비빔밥을 닮은 맛을 내고, 교향악과 같은 넉넉한 울림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의 가치를 깎아내려도 화내지 않고, 낮은 자리일망정 비굴하지 않은 삶을 꿈꾼다. 쓰고, 달고, 짜고 매운 날들이 섞이면서 비빔밥과 같은 성숙한 맛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날카롭고, 모난 성격의 한 귀퉁이가 교향악처럼 섬세하게 다듬어져 또 다른 멋진 날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89쪽)

"모름지기 낚시꾼이란 대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마리의 물고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물고기를 낚는다고 해도 이웃에 나누어줄지언정 사고파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어부와 다른 점이다." (138쪽)

▲ <장롱이야기> 조두이 지음
▲ <장롱이야기> 조두이 지음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한 회고

이 소중한 책을 그냥 묵힐 뻔했다. <장롱이야기>(불휘, 2019년 5월). 저자인 조두이(80) 씨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결혼하고 평생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며 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한두 편씩 글을 써 차곡차곡 모아 뒀다. 이걸 자녀들이 발견했고, 온 가족의 응원으로 나이 팔십에 드디어 책을 냈다.

나이가 들어 가만히 뒤돌아보는 소소한 기억들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이야기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 담겼다. 그렇기에 읽는 이에게 위로가 된다.

"내 신체 중에 제일 많이 보이는 손, 주름지고 구겨지고 볼품없이 변해 버린 내 손을 칭찬한다. 오늘까지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살림하며 세 아이 키워낸 바지런한 내 손, 머리 쓸 틈도 없이 도깨비방망이 되어 뚝딱 요리를 만들어 내는 내 손이 안쓰럽고 대견하다."(29쪽)

"제일 먼저 장만한 냄비 세트가 너무 좋아서 자다 말고 몇 번이나 부엌을 들락거렸던 기억은 나중에 냉장고를 장만하고 더 편리하고 좋은 가재도구를 살 때보다 훨씬 좋았다." (41쪽)

책에는 지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버스를 안 타고 걷고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아껴 마련한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야기도 있고, 틀니가 맞지 않아 이 없이 살게 되자 영양 가득한 밥 짓는 방법을 터득한 이야기나 나이 일흔에 제주 올레길을 완주한 이야기에는 노년의 행복한 기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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