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호 나올 만한 큰 들판 박경리 소설 구상과 '찰떡'
고소성 올라 전경 조망하니 또다른 경치 눈이 호강하네

요즘 같은 시기에 여행 이야기를 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문학 속 경남'을 주제로 느낌여행을 이어갈까 합니다. 그 첫 시간으로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와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소설 <토지>를 재현한 최참판댁. /하동군
▲ 소설 <토지>를 재현한 최참판댁. /하동군

◇반세기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년 집필하기 시작해 1994년 8월15일까지 26년 동안 쓴 대하소설입니다. 대하소설이란 게 소설 중에서 가장 긴 형식입니다. 일명 대 장편소설이라고도 합니다. 한자 그대로 아주 큰 강물 같은 소설입니다.

대하소설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소설 형식이에요. 영어로 '로만 플루'라고 합니다. 일단 등장인물이 복잡할 정도로 많고요, 소설 안에서 사건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길어요. 주로 역사소설이 많아요. 어떤 기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인물이나 집단이 겪는 일들을 소재로 많이 쓰죠.

우리나라 소설 중에는 <태백산맥>, <혼불>, <임꺽정> 이런 작품들이 있답니다. 보통 10권이 넘는 소설입니다. <토지>는 16권(솔출판사 기준)이죠? 요즘에는 판타지, SF 장르도 나옵니다. <반지의 제왕> 이런 것도 대하소설이죠.

<토지>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반세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이 일어난 직후인 1897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하동 평사리 부호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민족사라고 할 수도 있지요. 작품 속에 동학농민전쟁, 을사늑약, 청일전쟁, 간도협약, 만주사변 같은 근대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다 들어 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만 600여 명이에요. 보통 이런 소설 읽다 보면 이 인물이 누구지, 하면서 앞에 읽은 걸 다시 찾게 됩니다. 그래서 읽다가 좀 쉬고 다시 읽으라면 또 처음부터 읽어야 합니다.

▲ 고소성에서 본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이서후 기자
▲ 고소성에서 본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이서후 기자

◇상상력으로 그려낸 소설 속 평사리

<토지>의 공간적 배경은 기본적으로 하동 평사리입니다. 그리고 진주, 서울, 일본, 만주까지도 포함이 되는데, 규모가 아주 큰 소설이죠. 원래 박경리 선생은 평사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토지>를 구상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하동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1967~8년 즈음입니다. 잠깐 평사리를 스쳐 지나갔었답니다. 그때 바로 여기다! 하고 무릎을 탁, 치셨다고 해요. 일단은 대부호가 나올 만한 너른 들판이 있었고요, 민족의 역사가 서린 지리산 자락이고, 주요 인물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설정하고 싶었는데, 배경을 하동으로 하면 가능했던 거죠.

하지만, <토지>를 다 완성할 때까지 평사리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냥 지도만 보고 상상해서 쓰셨대요.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를 처음 찾은 게 2001년입니다. 1994년에 토지가 완성되었다고 했죠, 그로부터도 7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자기가 묘사한 것과 비슷해서 놀라셨다고 합니다.

원래 평사리에 부잣집이 있긴 있습니다. 평사리 최참판댁 갈 때는 언덕을 올라가잖아요. 안 올라가고 평사리 들판 따라 그대로 쭉 들어가면 악양면사무소 소재지입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정서리에 화사별서(花史別墅)라는 고택이 하나 있어요. 조씨 고가라고도 합니다. 1918년에 만든 거라고 하는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5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하동에서는 '조부자집'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참판댁을 여기서 착안했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 소설 속 내용은 조부자집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심지어 조부자집은 지금으로 치면 별장이에요. 그러니까 최참판댁 이야기 자체는 선생님이 진짜 지어내신 거죠.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게 지금 평사리에 가면 최참판댁 기와집 있죠? 그게 마치 실제로 옛날에 최참판댁의 모델이 된 부자가 살던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소설 <토지> 내용을 재현해서 현대에 지은 겁니다.

▲ 고소성에서 본 섬진강./이서후 기자
▲ 고소성에서 본 섬진강./이서후 기자

◇고소성에서 바라본 장엄한 풍경

사실 세트장과 최참판댁이 소설 내용하고 아주 잘 맞아떨어진 건 굉장한 우연인 거죠. 아니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도 최참판댁에 가면 항상 들판 쪽으로 난 대문 앞에 서봅니다. 그러면 평사리 들판이 훤히 보이는 게 마치 옛날부터 최참판댁이 그 자리에 실제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합니다.

자, 최참판댁은 인제 하동에서도 제일 유명한 관광지라서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그렇지만, 관광객 중에 <토지>를 다 읽으신 분이 전체 비율로 따지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책을 안 읽어도 <토지> 내용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기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마당극 전문 극단 큰들이라고 있어요. 굉장히 실력 있는 곳입니다. 단원 전체가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산청에 산청마당극마을이라고 아예 마을을 하나 만들어서 정착했죠. 큰들이 주말마다 <최참판댁 경사났네>라는 마당극 공연을 합니다. 공연 무대가 바로 최참판댁 안이고요. 세트장이 시작되는 삼거리에서 길놀이부터 시작하거든요. 거기서부터 공연 보시다가 최참판댁으로 이동해서 2부 공연이 시작되는데, 이 공연이 토지 내용을 압축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최참판댁 말고 평사리에 가면 들러 볼만한 곳 몇 곳만 소개할게요. 네, 최참판댁에서 더 올라가면 토지문학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크진 않는데, 박경리 선생의 생애, 토지를 집필할 때 모습, 유품 이런 걸 볼 수 있습니다. 문학관 아래 보면 작년에 새로 생긴 한옥체험 시설도 있습니다. 최참판댁 한옥문화관이라고 여기서 하룻밤 자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차로 가실 거면 평사리에 있는 고소성을 먼저 가보시면 좋습니다. 삼국시대에 쌓은 돌성인데요, 성 자체보다는 여기서 보는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이 최참판댁에서보다 더욱 멋집니다. 평사리 들판 조금 지나 지리산생태과학관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고소성은 원래가 군사용도로 지은 거라 섬진강 물길, 평사리 들판이 그냥 한눈에 다 보이는 자리에 있습니다.

참고 문헌 <토지> 전20권(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년) <소설로 읽는 경남>(김은영, 선인,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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