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하상칠 씨 '민권수호'주도하고도 가족에게조차 숨겨
뒤늦게 유공자 신청했지만 증거 없단 이유로 인정 안 돼

3·15의거 60돌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올해는 국가기념식이 열리지 못하고 사회적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지만,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당대의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두 차례 글을 싣습니다. 3·15의거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는데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 인물의 이야기와 마산지역 풍경을 돌아보며 3·15의거 콘텐츠화 가능성을 엿봤습니다.

▲ 고 하상칠 씨 딸인 하효선(왼쪽) ACC프로젝트협동조합 대표와 하 대표 남편 서익진 경남대 교수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고 하상칠 씨 딸인 하효선(왼쪽) ACC프로젝트협동조합 대표와 하 대표 남편 서익진 경남대 교수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그날 밤 나 혼자만 싸웠던 것도 아니고 마산시민 모두가 앞장서 싸웠기에 자기 혼자만이 영웅 취급을 받는다거나 어떤 보상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략) 늦게나마 우리 자녀와 후손들에게 민권수호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용맹성을 들려줌으로써 정의로운 나라 사랑이 진정 무엇인가를 교훈으로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1960년 마산시 산호동에 살던 35세 얼음소매상 하상칠(사진) 씨 이야기다. 그는 3·15의거 당일 야간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평생 숨겼다. 50년이 지난 2010년 10월 7일에야 그날의 이야기를 전했고, 이는 <3·15의거 증언록>에 실렸다.

2017년 7월 91세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앞서 그가 증언을 시작한 때는 국립3·15민주묘지가 들어서고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는 시기였다. 3·15묘지 준공식은 2003년 3월, 3·15의거 국가기념일 제정은 2010년 3월이었다.

딸인 하효선(64) ACC프로젝트협동조합 대표와 사위인 서익진(65)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도 당시 그의 증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긴 시간 침묵한 이유가 있었다.

"장인께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남원 쪽에서 나무하러 갔다가 인민군에 잡히고 나중에는 국군의 포로가 돼 거제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살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빨갱이로 몰릴 것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가족한테도 3·15 이야기를 안 했다. 이후에 경찰 퇴직자 모임인 경우회 고문에 이름을 올려놓을 정도로 철저히 숨겼다."

가족은 그가 떠나고 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사진·일기·신문기사·병원기록 등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없고 진술만 있다는 이유로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3·15와 관련한 국가기록물을 찾고 있지만, 개인정보라며 공개가 안 되고 있어 개인 또는 민간단체로서는 자료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두 가지 핵심 증언이 있다. 바리케이드를 쳤거나 총기와 관련한 이야기는 시중에 떠돌지만 증언이 없었는데, 그 내용이 장인한테서 나왔다. 미시사 방법론은 새로운 역사 기술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거시사·사회사·사상사·정치사 등 집단 중심의 기술이 대세였는데, 미시사는 특정 개인이나 소집단의 사고, 생활, 활동 등을 연구해 그 당시 큰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술이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누가 봐도 합리적인 진술이라면 그보다 정확한 것이 없다. 유공자 심사에도 미시사 연구를 적용했으면 한다."

A4용지 4쪽에 가까운 증언록 중 일부는 이렇다.

"무학국민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돌을 치마에 담아 나르고 사람들은 투석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선 사람들은 다닐 수 있지만 차는 다닐 수 없도록 길을 가로지르는 바리케이드를 치기 위하여 전봇대를 옮겼다", "총을 탈취한 학생들에게 '학생들, 지금 우리가 하는 이 데모는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방해하는 무리들의 부정선거를 막기 위함이지, 군인들이나 경찰들을 없애거나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총을 서로 겨누고 또 쏜다면 이건 우리의 목적과는 다르다. 여기 군인들은 옷이 다를 뿐 우리들의 형제이고 같은 심정일 수도 있다. 단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따라서 총을 뺏어 서로 겨누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총을 모두 회수했다."

2018년 서 교수는 장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썼다. 하 대표는 이를 문화예술 기획 분야로 확장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여러 국내외 작가가 3·15의거를 주제로 다양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 것이다.

"사실 아버지 이야기라서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특히 3·15는 지역·인류학적 연구와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시기 부정선거에 맞서 불붙은 곳이 마산이다. 그렇다면 왜 마산이었는지, 개개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제대로 살펴봤으면 한다. 한 지역에서 능동적으로 발현한 모습, 당시 사람들의 표현 방식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함께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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