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페스트 창궐한 도시서 이성적으로 싸우는 인물들
코로나 사태 혐오·불안 속 희망 주는 사람들 떠올라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는 지금도 꾸준히 출판되는 현대 서양고전이다. 1941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해 1947년에 완성했다. 이 작품은 전염병이 무섭게 번지고, 그래서 온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은 극복해내는 과정을 다룬다. 페스트는 중세를 강타한 전염병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시간 배경을 1940년대로 잡았다. 2차 세계대전과 맞물리는 시기다. 공간 배경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있는 해변 도시 오랑이다. 지도를 찾아보니 실제로 있는 곳이다. 오랑에서 보면 바다 너머가 바로 스페인이다. 알제리는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로 있다가 1962년에야 독립했다. 카뮈는 알제리 프랑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뮈가 소설을 쓸 당시는 여전히 프랑스 영토였다. 그러니 카뮈로서는 고향 주변에서 적당한 곳을 배경으로 삼은 셈이다.

◇이성을 잃고 마비된 도시 = 이야기는 주인공인 의사 리외가 계단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도 페스트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감염원이었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료실을 나와 계단 중간에서 죽은 쥐 한 마리에 발이 걸렸다. 그 순간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짐승을 옆으로 치우고 계단을 내려왔다. 하지만, 거리로 나왔을 때, 그는 쥐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수위에게 알려 주려고 발길을 돌렸다. (중략) 그 이후 며칠간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죽은 설치류의 수가 증가했고 수거량은 매일 아침 더욱 넘쳐 나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부터는 쥐들이 쏟아져 나와 떼를 지어서 죽어 가기 시작했다. (중략) 이따금 관공서의 홀에, 학교의 실내 체육관에 그리고 카페의 테라스에까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쥐가 한 마리씩 죽어 가기도 했다. 우리 시민들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에까지 그것들이 나타나자 기겁을 했다."

페스트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시에 퍼진다. 해결방법이 없는 대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때로 예언과 전설, 미신에 집착하기도 한다. 또,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기도 했다.

"문제는 예방격리에서 돌아와 장례와 불행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페스트를 태워 없앤다는 환상 속에서 자기 집에 불을 지른 사람들이었다. 거센 바람 탓에 여러 동네 전체를 끊임없이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잦았는데, 이런 행동은 막기가 매우 어려웠다. 당국에서 실시하는 가옥 소독으로 모든 전염 위험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으나 허사였으며, 나중에는 그런 철없는 방화자들에게 아주 엄격한 형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법령을 공포해야 했다."

국내 출판사에서 나온 알베르 카뮈 소설 페스트 표지 모음./캡처
국내 출판사에서 나온 알베르 카뮈 소설 〈페스트〉 표지 모음./캡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 = 혼란하고 비이성적인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현실에 맞서는 인물도 있다. 의사 리외, 신문기자 랑베르 같은 이들이다. 거창한 명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전력을 기울였을 뿐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내가 명명백백히 알고 있는 것은, 각자가 그것을, 페스트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래요, 세상에 그 누구도 그 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시 방심해서 감염균을 내쉬어 다른 사람의 얼굴에 붙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나는 잘 압니다. 미생물은 자연적입니다. 그 이외의 것, 건강, 온전함, 무결점 등을 원하신다면, 그건 의지에 달려 있어요.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 그냥 존재할 뿐인 사물과 달리 인간은 능동적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인간 자체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이 소설에 녹아 있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실제로 도시에서 올라오는 환희에 찬 함성들을 들으면서 리외는 이런 환희가 늘 위협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쁨에 찬 이 군중은 모르고 있지만, 그는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페스트는 여전히 존재하는 전염병이긴 하다. 하지만, 항생제 발전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발생이 거의 없다. 실제로 페스트에 걸리더라도 치료만 받으면 낫는다. 카뮈가 <페스트>를 쓰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페스트를 소재로 했을까. 2차 세계대전을 혹독하게 겪은 카뮈에게는 전쟁이나 전체주의, 나치즘 같은 것들이 마치 페스트 같은 대재앙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그는 혹독한 재앙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두 발로 굳건히 서서 서로 다독이며 헤쳐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혐오, 불안이 안개처럼 세상을 흐리는 지금에도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격리를 선택하고, 건물주는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줄인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더 급한 사람에게 양보한다며 마스크 안 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카뮈가 전쟁 중에 발견한 희망이자, 우리 인간의 참모습이다.

※참고 문헌 <페스트>(변광배 역, 더스토리,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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