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유행 당시 쓴 작품 죽음 창궐한 피렌체 배경
전염병을 신의 벌로 여겨 묵묵히 이어간 일상 담아

페스트는 1300년대 중반 유럽을 휩쓸었던 전염병이다. 몇 년 만에 유럽 인구를 5분의 1로 줄여버린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이 때문에 결국 1000년을 이어오던 중세가 막을 내린다. 당연하게도 페스트는 이후 여러 문학 작품의 소재로 쓰였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소설집 <데카메론>은 아마 가장 당시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책이 아닐까 한다. 1349년에서 1351년 사이, 페스트가 유행할 당대에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검은 반점 = 페스트가 퍼진 피렌체를 탈출해 시골 마을 별장에 모인 젊은 여성 7명, 남성 3명이 있었다. 이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자 가장 무더운 오후 시간에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이렇게 열흘 동안 100편의 이야기를 모은 게 데카메론이다. 그러니 책 자체는 페스트에 대한 게 아니다. 다만, 초반에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이때 당시 피렌체에 유행했던 페스트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나신 지 1348년이 되던 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가운데 가장 빼어나고 고귀한 도시인 피렌체에 치명적인 흑사병이 돌았습니다. 천체의 영향이 인간에게 미친 것이라고도 하고 우리의 삶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노여움 때문이라고도 합니다만, 어쨌든 그 전염병은 몇 해 전 동쪽에서 시작되어 살아 있는 생명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빼앗으면서 서쪽으로 향해 처절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책에서는 흑사병이라고 했는데, 이는 페스트의 다른 이름이다. 정확하게는 페스트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대부분이 흑사병으로 죽었기에 페스트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데카메론>에서 묘사한 증세를 보면 왜 흑사병이라 불렀는지 알 수 있다.

"병에 걸리면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샅이나 겨드랑이 종기부터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은 달걀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떤 것은 보통 사과만 하기도 했습니다. (중략) 종기는 앞서 말한 두 부위에서 시작되어 삽시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검거나 납빛을 띠는 반점들이 전염병의 특성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중략) 일단 이 반점이 나타나면 누구나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야말로 죽음의 검은 반점이라고 하겠다.

▲ 액자 속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가 미상의 미니아튀르(세밀화), 데 그레고리 출판사의 <데카메론> 삽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조반니 보카치오', 별장의 이야기꾼 무리.  /캡처
▲ 액자 속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가 미상의 미니아튀르(세밀화), 데 그레고리 출판사의 <데카메론> 삽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조반니 보카치오', 별장의 이야기꾼 무리. /캡처

◇절제하거나 욕망하거나 = 당시 온 사회를 휩쓴 공포 분위기는 마치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지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과 섞일 때면 여지없이 마른 장작이나 기름종이에 불이 확 옮겨 붙듯 빠른 속도로 병이 퍼지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더 끔찍한 일도 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환자와 말을 주고받거나 접촉하기만 하면 이내 감염이 되거나 전염된 사람들처럼 똑같이 죽어갔고, 그뿐만 아니라 환자가 입었던 옷이나 사용했던 물건들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옮겨 가는 것 같았습니다. (중략)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일 혹은 더한 일들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망상에 시달렸지요. 모두가 극도로 잔인해져서 환자와 그에 속한 것들을 피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 목숨은 자기가 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습니다."

물론 요즘이야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흥미로운 건 보카치오가 묘사한 당시 사람들의 전염병에 대한 대처방법이다.

먼저, 철저하게 고립되고 은둔하면서 병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환자가 없는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절제된 태도로 정갈한 음식을 먹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며, 다른 사람과 만남을 끊고 외부의 일이나 죽은 사람이나 병에 걸린 사람들 일을 깨끗이 잊은 채, 저희끼리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즐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페스트를 신의 형벌로 여기고 묵묵히 그들만의 일상을 이어갔다.

"그에 반해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고 노래하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닥치는 대로 욕망을 채우고 모든 불안과 의심을 지우는 것이 최선의 대처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를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옮겨서 밤이나 낮이나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옮겨다니며 끝없이 흥청망청 마셔 대고, 그도 모자라 남의 집까지 쳐들어가서 걸리는 대로 혹은 마음내키는 대로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받아들이는 방법은 다르지만, 둘 다 전염병을 견디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던 시절 삶의 양상이다. 중세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 본성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 코로나19의 공포와 불안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지금 우리의 모습도 결국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상상을 해본다.

※참고문헌 <데카메론 1>(박상진 역, 민음사, 2012년)

▲ 〈 데카메론1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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