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고야·앙리 마티스 등 특유 작품 세계 구축 동기…병마·장애 극복 노력 한몫

각종 질병은 수많은 예술가를 공포에 떨게 하고 급기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걸작이 탄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바로 '빛의 화가'라 불리는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다. 모네는 백내장을 앓았는데, 이 시기 마지막 연작인 '수련(Water Lily, 1897∼1926)'을 남겼다.

모네가 그린 수련 연작은 250여 점으로 제작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초기 작품에는 맑은 연못 위에 수련이 떠다니는 정원 전체 풍경이 보이고, 물이 투명해 하늘이 반사되기도 한다.

반면 후기로 갈수록 물은 탁해지고 작품 속 대상은 수련인지, 연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려져 추상 회화 모습을 띤다.

특히 채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백내장이 심해진 탓이다. 백내장은 눈으로 들어오는 색을 왜곡하고, 특히 청색광을 차단해 사물을 붉게 보이게 한다.

모네는 시력을 잃어 힘든 순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기념비적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었다.

▲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1897∼1926)초기 작 '흰색 수련 연못'.
▲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1897∼1926)초기 작 '흰색 수련 연못'.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40대에 원인 불명의 난치병을 앓고 청력을 잃는다. 일생일대 사건으로 고야는 화가로서 대전환점을 맞는다. 상류층만을 향해 있던 고야의 눈길은 처참한 현실과 인간 내면을 향했다. 그 정점은 '검은 그림(Las pinturas negras, 1819∼1823)' 연작이다.

70세가 넘은 고야는 마드리드 외곽에 별장 '청각장애인의 집(Quinta del Sordo)'을 구하고 세상과 접촉을 끊은 채 '검은 그림'이라는 명작을 완성했다. '검은 그림'은 별장 벽에 회반죽을 칠해 그린 그림이다.

작품은 음울하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고야는 사람과 동물을 일그러지게 그리고, 신화·성서, 민간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표현하면서 추악한 사회 현실을 고발했다.

고야는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해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이는 이후 인상주의 화가뿐 아니라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감을 줬다.

피카소의 유일한 라이벌,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 역시 질병을 앓았다. 그는 70대에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손에 관절염이 생겨 이젤 앞에 설 수조차 없게 된다. 하지만 마티스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붓을 쓰지 못하게 된 마티스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색종이를 잘라 캔버스에 배치하는 '종이 오리기(Cut-out, 1943∼1954)'라는 새로운 작품 형식을 창조했다. 마티스는 이후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고 말할 만큼 작업에 큰 만족감을 보이기도 했다.

▲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1897∼1926) 중 모네의 백내장 병세가 심해진 후기 작 '수련 연못, 저녁'. 초기와는 달리 추상 회화 모습을 띤다.
▲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1897∼1926) 중 모네의 백내장 병세가 심해진 후기 작 '수련 연못, 저녁'. 초기와는 달리 추상 회화 모습을 띤다.

탄력을 받은 마티스는 더욱 밝은 색채를 구사하며 작가로서 한 단계 발돋움한다. 특히 색감이 강렬하고, 배경과 형상 구분이 모호한 작품은 그간 본 적 없는 자유로움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명 '땡땡이 호박'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1929∼)는 어릴 적부터 편집적 강박증을 앓았다.

구사마 작품은 크게 물방울과 거울, 풍선이라는 세 아이콘으로 나뉘는데, 구사마 작품의 특징인 끊임 없이 반복되는 물방울무늬는 편집적 강박증의 결과물이다. 그는 편집적 강박증과 그에 따른 환각 증세를 그대로 작품에 연결했고, 이는 같은 요소나 문양을 반복, 확산하는 구사마만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되었다.

구사마는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시절 시작된 장애를 극복하려 예술을 추구할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에게 미술은 취미가 아닌 살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그가 살고자 열정을 쏟은 덕에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암울한 시절이다. 힘든 시기를 보낸 미술가들이 남긴 눈부신 작품들, 과거 그들이 지금 우리에게 보내는 희망 메시지는 아닐까.

▲ 일본 나오시마섬 미야노우라항에 세워진 구사마 야요이 작 '빨간 호박'. /김두천 기자
▲ 일본 나오시마섬 미야노우라항에 세워진 구사마 야요이 작 '빨간 호박'. /김두천 기자

※참고문헌

<아트비하인드: 우리가 사랑한 예술가들의 낯선 뒷모습>, 변종필, arte, 2017

<서양미술사를 보다>, 양민영, 리베르스쿨,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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