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출산 앞둔 아내 감염돼 병구완하다가 옮아 사망
에드바르 뭉크, 몸 허약한 집안 내력 때문에 철저한 관리로 병 이겨

동명의 알베르 카뮈 소설이 인기를 얻는 바람에 '페스트'가 최악의 전염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페스트도 명함을 내밀기 머쓱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은 따로 있다. 바로 스페인독감이다.

스페인독감은 1918∼1920년 제1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대유행을 했다. 당시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이 1500만 명이라는데,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적게는 2100만 명, 많게는 1억 명까지도 추정된다.

통계마다 차이가 큰 이유는 빠른 전염 속도에 있다. 당시 진단할 겨를도 없이 사망한 사람이 많았다. 야전에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하거나 그 합병증으로 사망한 군인은 스페인독감 사망자에 포함하지도 않았다.

예술가들도 스페인독감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그 엄청난 위력 앞에 운명이 갈린 두 화가가 있다.

▲ 에곤 실레 작 '가족'(The Family·1918).
▲ 에곤 실레 작 '가족'(The Family·1918).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에곤 실레(1890∼1918)가 유일하게 온전한 가족을 그린 작품 '가족(The Family, 1918)'이 있다. 작품 아래쪽에는 귀여운 아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 뒤로 발가벗은 여인이, 그 뒤로 남자, 에곤 실레 자신이 있다. 작품 속 가족은 행복한 모습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습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실레는 결혼 후 각종 전시회에서 성과를 내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었으니, 아내 임신 소식이다. 실레는 너무나 기뻐 조카를 모델로 태어나지 않은 아이 얼굴을 그렸다. 단란한 가족을 꿈꾸며….

하지만 작품을 완성한 그해 스페인독감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실레 아내가 독감에 감염되면서 실레는 아내와 뱃속 아이를 함께 잃고 만다. 그리고 아내를 간호하던 실레 역시 아내가 죽은 지 3일 만에 사망한다.

그의 나이 28살 때 일이다.

▲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
▲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

반면 에곤 실레뿐 아니라 그의 절친 구스타프 클림트 목숨까지 앗아간 스페인독감을 이겨내고, 80세까지 장수한 화가도 있다.

노인이 의자에 앉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멍하니 정면을 보고 있다. 머리가 벗겨진 이 남자는 어딘지 초췌해 보인다.

'스페인독감 후의 자화상(Self-portrait after the Spanish Flu, 1919)' 에드바르 뭉크(1863∼1944) 작품이다.

사실 질병은 뭉크를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노르웨이에서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뭉크는 어린 시절 류머티즘으로 인한 고열과 기관지천식으로 시달렸다.

▲ 에드바르 뭉크 작 '스페인독감 후의 자화상'(Self-portrait after the Spanish Flu·1919)
▲ 에드바르 뭉크 작 '스페인독감 후의 자화상'(Self-portrait after the Spanish Flu·1919)

다섯 살에는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누나는 결핵, 남동생은 폐렴, 여동생은 정신분열증을 앓다 목숨을 잃었다.

한평생 질병과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았던 뭉크는 스스로 행동 수칙을 정하고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발에 물 적시지 않기, 운동하지 않기, 장례식장 가지 않기, 화초 가꾸지 않기 등. 노력 덕분일까? 뭉크는 병약한 몸으로 그 무시무시한 스페인독감을 이겨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레와 아내가 비극을 맞은 건 평소 건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이토카인 폭풍' 증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증상은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정상세포가 파괴돼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면역력이 약한 뭉크가 스페인독감이라는 고비를 넘기고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참고문헌

<미술관에 간 의학자>, 박광혁, 어바웃어북, 2017

<아트비하인드: 우리가 사랑한 예술가들의 낯선 뒷모습>, 변종필, art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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