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속에서도 싹튼 예술…전염병 그림 소재 삼아
고통 속 여인의 연주 그린 '희망'…오바마 "담대한 희망 줘"

코로나19 탓에 온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입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결핵, 페스트, 스페인독감, 천연두 등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며 인간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예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미술편, 문학편, 음악편으로 나눠 예술과 질병 사이에 숨은 이야기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미술편에서는 세 번에 걸쳐 질병과 관련된 작품과 질병을 겪은 화가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미술 작품에는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생각과 취향은 물론 사건, 사고도 담겨 있다. 개인은 물론 사회를 피폐하게 물들이는 질병 역시 많은 작품의 소재로 사용됐다.

대표주자는 페스트다.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초토화했던 전염병 페스트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균에 감염되면 건장한 사람도 하루 이틀 만에 사망하면서 4~5년 사이 유럽 인구의 30~50%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많은 예술품을 남겼다.

▲ 아르놀트 뵈클린 작 '페스트'
▲ 아르놀트 뵈클린 작 '페스트'

스위스 바젤 출신 아르놀트 뵈클린이 그린 '페스트(pest, 1898)'를 보자. 악마처럼 보이는 괴물이 박쥐 날개와 거대한 쥐 꼬리를 한 동물을 타고 있다. 괴물이 좁은 골목을 활보하며 손에 든 낫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뵈클린이 죽기 3년 전에 그렸는데, 미완성 작품이다. 전염병을 주제로 한 작품이 미완성으로 끝났다니 더 으스스하다.

이 밖에도 프란시스코 고야의 연작 '전쟁의 참화: 페스트 병동(De gruwelen van de oorlog: Het Pest-lazaret, 1808~1814)', 앙투안 장 그로 '자파의 페스트 병동을 방문한 나폴레옹(Bonaparte visitant les pestiferes de Jaffa, 1804)' 등도 페스트를 주제로 했다.

디프테리아는 어린아이에게 흔히 발생하는 병으로 국가예방필수접종 대상이다. 균에 감염되면 특히 목 부위가 심하기 부어올라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다. 지금은 백신이 개발돼 예방할 수 있지만 19세기 초까지도 디프테리아는 치명적인 감염병이었다.

▲ 리처드 테넌트 쿠퍼의 '디프테리아'
▲ 리처드 테넌트 쿠퍼의 '디프테리아'

영국 화가 리처드 테넌트 쿠퍼는 환자를 질식시켜 죽이는 디프테리아를 유령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 '병든 아이를 목 졸라 죽이는 유령의 골격(A Ghostly Skeleton Trying to Strangle a Sick Child, 1912)'을 보면 해골 모습을 한 유령이 잠든 여자 아이의 목을 조르고 있다.

시력을 잃은 여인을 통해 희망을 말하는 작품도 있다. 버락 오바마가 언급하며 유명해진 영국 작가 조지 프레데릭 왓스의 '희망(Hope, 1886)'이다. 붕대로 눈을 가린 여인이 커다란 구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그녀 손에 쥐어진 악기에는 남아 있는 현이 하나뿐이다. 여인은 한 줄 남은 현으로 연주하려 애를 쓴다.

이 작품에서 커다란 구는 지구, 눈먼 여인은 인간, 현이 끊어진 악기는 절망, 그리고 마지막 남은 현 한 줄은 희망을 상징한다.

▲ 조지 프레데릭 왓스의 '희망'
▲ 조지 프레데릭 왓스의 '희망'

오바마는 "현이 하나뿐인 악기로 끝까지 곡을 연주해내려는 그녀에게서 '담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아픈 통풍의 고통을 아주 생생하게 그린 작품도 있다. 제임스 길레이 '통풍(The gout, 1799)'을 보면 악마처럼 생긴 작은 괴물이 날카로운 이빨로 발등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다. 무시무시한 발톱으로 발등을 찍어 깊게 팬 부분은 검게 변했다. 작품을 보기만 하는데도 인상이 찌푸려진다.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도 같다.

※참고문헌 <미술관에 간 의학자>, 박광혁, 어바웃어북, 2017.

▲ 제임스 길레이의 '통풍'
▲ 제임스 길레이의 '통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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