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교남명소'로 이름나
얕은 산에 깊은 소나무 숲길 운치
사방 탁트인 통영 바다 풍경 매력

이번 느낌여행은 통영 남망산조각공원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38회 경남연극제를 계기로 소개하려던 곳입니다. 다음 달 6일부터 17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리려던 행사입니다. 그 주변에 바로 남망산조각공원이 있습니다. 경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전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었습니다. 21일 확진자가 나오면서 경남연극제는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행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꼭 지금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따뜻한 봄날 남망산을 한 번 올라보시면 좋겠습니다.

◇영남에서도 유명한 풍경 = 자, 일단 남망산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통영 강구안 아시죠? 횟감을 사는 중앙활어시장이 있고, 충무김밥 식당과 꿀빵 가게가 늘어서 있으며 동피랑 갈 때 보면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 곳. 지금은 강구안 공사로 거북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아무튼, 이 강구안에서 바다 방향으로 바로 왼쪽에 보이는 낮은 산이 남망산입니다. 지금은 남망산조각공원이란 이름입니다만, 애초 여기는 공원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남망산이라고 하는데, 원래 이름은 그냥 남망입니다. 통영 사투리로 '망'이 산봉우리, 산등성이란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 남산(南山)이란 뜻입니다. 나중에 산(山)자가 또 붙어서 남망산(南望山)으로 이름이 굳어집니다.

연기되긴 했지만 앞으로 경남연극제가 열릴 예정인 통영시민문화회관은 1997년 이 남망산 자락에 건설됩니다. 강구안에서 보면 남망산 푸른 소나무숲과 하얀 문화회관 건물의 색깔 대비가 선명합니다. 사실 문화회관 앞에서 보는 풍경이 참 좋습니다. 통영항, 통영운하, 강구안까지 훤하게 다 보입니다. 통영 앞바다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배들 덕분에 도시가 굉장히 활기차게 보입니다. 이곳만으로도 남망산에 가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여기서 보는 풍경은 옛날부터 유명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남망산 일대를 교남명소(橋南名所)라고 했습니다. 교남은 영남지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영남 지역에 있는 절경이란 말입니다.

▲ 강구안에서 바라본 남망산. /이서후 기자
▲ 강구안에서 바라본 남망산. /이서후 기자

문화회관으로 가는 길목에 소녀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 명예를 위한 정의비'입니다. 2013년에 만들어졌는데,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 중에서는 비교적 초기 작품입니다. 보통 소녀상 하면 떠오르는 정밀한 청동조각과는 다릅니다. 두 팔을 벌리고선 어찌 보면 귀여운 돌 조각입니다. 제막식 당시 통영에 사시던 고 김복동 할머니가 가만히 어루만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23년 전 만든 조각공원 = 지금 있는 남망산조각공원이 생긴 게 1997년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조각 공원이란 게 흔한 개념은 아니었어요. 창원시가 2년마다 조각비엔날레를 하면서 공원에 열심히 조각을 남기고 있는데, 통영은 23년 전에 남망산에다 이런 걸 만들었던 거죠. 이 조각공원이 어떻게 생겼느냐, 1997년에 통영에서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열립니다. 이때 통영 출신 심문섭(77) 조각가(지금 중앙대 명예교수로 계십니다) 이분이 당시 국내외 유명 조각가를 심포지엄에 초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들이 심포지엄 기간에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망산에 설치된 거죠.

조각공원이 생기기 전에도 남망산은 도심 속 공원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1969년, 당시는 통영시가 아니고 충무시였는데, 이때 도시계획으로 남망산이 공원으로 결정됩니다. 그때는 충무공원이라고 했다더군요. 1994년에 본격적으로 공원이 개발되면서 '남망산공원'으로 바뀝니다.

◇뜻밖에 깊은 숲길 = 남망산은 높이가 97m인 조그만 산입니다. 그런데 숲이 아주 깊습니다. 소나무가 참 많은데, 다들 정말 키가 큽니다. 그래서 그런지 숲에 들어가면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바로 그래서 산책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저절로 사색이 되는 곳이거든요. 남망산 8분 능선 즈음에서 산책길이 산을 한 바퀴 돌게 돼 있습니다.

▲ 남망산에서 바라본 동호만. /이서후 기자
▲ 남망산에서 바라본 동호만. /이서후 기자

문화회관 쪽에서 올라가서 한 바퀴 돌다 보면 강구안 말고 전망이 탁 트이는 곳이 나옵니다. 강구안에서 남망산 반대편에 있는 동호만이란 곳입니다.

여기는 강구안하고는 또 다른 풍경입니다. 통영수협이 있어서 그런가, 어선이 정말 많이 정박해 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어선들 사이로 입선하거나 출선하는 배들의 엔진 소리가 활기찹니다. 여기는 관광지가 아닌 엄혹한 삶의 현장인 거죠.

계속해 산책길을 걸으면 숲하늘길이라는 시설이 나옵니다. 산책길에서 나무 위로 덱길을 만들어서 바로 정상까지 이어지게 해놨습니다. 높은 나무 꼭대기와 비슷한 눈높이가 되니 이름 그대로 숲 위 하늘을 걷는 느낌이 듭니다.

숲하늘길은 정상 아래 정자까지 이어집니다. 수향정이라고 1985년에 지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입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보이는 전망이 좋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지금은 경치가 거의 안 보입니다. 나무가 많이 커서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오는 정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나무들 키가 커서 풍경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대신 바람도 안 불고 햇볕이 정말 잘 들어서 해바라기하기 딱 좋습니다.

▲ 통영 남망산 정상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한국전쟁 중에 세워졌다. /이서후 기자
▲ 통영 남망산 정상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한국전쟁 중에 세워졌다. /이서후 기자

◇위기 극복 의지를 담은 이순신 동상 = 그리고 정상에 가시면 나름 의미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무서운 기세의 무사가 아니라 근엄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입니다.

이 동상이 세워진 게 1953년 5월 31일입니다. 휴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 체결되죠. 전쟁이 거의 끝날 때 세워진 건데요. 당시 통영으로 피난왔던 김경승이란 조각가가 만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1952년 임진왜란 6주갑을 기념해서 세운 겁니다. 주갑이 60년이거든요. 임진년마다 기념을 한 거죠. 1952년도 임진년이었습니다.

이 동상 세울 때 군대 장비가 동원되긴 했지만, 통영 주민들이 곡괭이 들고와서 돌을 깨서 정상을 다듬었답니다.

전쟁 통에 동상 하나 세우는 데 엄청나게 열심이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이 동상은 전쟁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보자는 통영 주민들의 어떤 의지 같은 게 담겨 있지 않나 싶어요.

▲ 남망산에서 바라본 통영항. /이서후 기자
▲ 남망산에서 바라본 통영항.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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