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들 단원 인간미에 매료 거의 매 주말 공연 관람
본 작품 또 봐 "날씨·기분·관객 따라 다른 느낌 줘"
블로그에 쓴 관극 후기들 두 권 책으로 엮어내기도

지금까지 이런 관객은 없었다. 이 정도면 미쳤다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경상대 이우기(54) 홍보실장. 하동 최참판댁이든, 산청 동의보감촌이든 마당극 전문 극단 큰들 공연을 취재할 때마다 그를 만났다. 한두 번까지는 우연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후로도 관객 틈에 앉아 있는 그를 계속 만났다. 나중에야 그가 큰들 공연을 거의 빠지지 않고 본다는 사실, 매번 공연 후기를 블로그에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공연을 보고 또 보고 = 2018년 33회, 2019년 39회. 그가 지금까지 큰들 마당극을 본 횟수다. 1년이 52주라고 하면 거의 주말마다 큰들 공연을 보러 다닌 셈이다. 큰들 마당극 작품은 현재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났네>, <오작교 아리랑>, <남명>, <역마> 5개. 이 중 이 실장이 가장 많이 본 게 <효자전>과 <최참판댁 경사났네>다. <효자전>은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최참판댁 경사났네>는 하동 최참판댁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주말마다 진행하는 공연이다.

"처음에는 극단 큰들도 저를 이상하게 본 것 같아요. 아무리 열성 관객이라도 일 년에 공연을 10번 보기도 어려운데, 그것도 같은 작품을 저처럼 많이 보는 사람이 없었나 보더라고요."

물론 큰들 마당극 공연은 정말 재밌다. 실제로 공연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관객들이, 나중에는 완전히 몰입해 웃다가 울다가 하는 것을 몇 번인가 봤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면 뜻밖에 굉장한 공연을 봤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런 관객이라도 매주 가서 그 공연을 보고 또 보고 하진 않는다. 설사 시간이 넉넉하더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실장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같은 마당극을 계속 보러 가느냐는 질문은 많이 받았나 보다. 2018년에 쓴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 2018년, 2019년 큰들 마당극 공연 후기를 모아 만든 책자를 든 이우기 경상대 홍보실장. /이서후 기자
▲ 2018년, 2019년 큰들 마당극 공연 후기를 모아 만든 책자를 든 이우기 경상대 홍보실장. /이서후 기자

"큰들 마당극도 갈 때마다 다르다. 만약 그게 영화였다면 한두 번 보고 나면 시시해질 것이다. 마당극은 배우들이 직접 실연을 하기 때문에 할 때마다 다르다. 날씨 때문에 다를 수도 있고 그냥 그날 기분 때문에 다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관객들의 반응 때문에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차이를 느끼고 관찰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중략) 몇몇 배우는 여러 배역을 맡는데, 그런 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고 관객 가운데 어떤 이는 엉겁결에 불려나갔는데도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성의껏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차지다. 이쯤 설명하면 몇몇 사람은 고개를 흔든다. '말은 맞다. 극단 큰들 마당극 재미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너는 좀 병인 것 같다.' 나는 빙그레 웃는다." ('큰들 마당극을 자꾸 보러 가는 까닭' 중에서)

◇정 많은 큰들 단원에 이끌려 후원회원이 되다 = 그렇다면, 애초에 그가 큰들 마당극에 빠진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큰들은 1984년 창단한 역사 제법 오랜 극단이다. 이 실장이 경상대 입학할 때도 공연을 하고 있었고, <경남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 정기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살았다고 한다.

"제가 속한 조그만 모임이 있어요. 2016년에 모임에서 가수를 초청해서 진주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때 큰들 단원 몇 명도 보러 왔죠. 공연 마치고 뒤풀이를 했는데, 큰들 단원들이 뒤풀이 자리를 끝까지 지켜준 게 너무 고마워서 모임 친구들이랑 함께 후원회원에 가입했어요. 2017년 정기공연 때 <효자전>을 봤는데, 어휴 제가 그걸 보고 엄청나게 울었어요. 사람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굉장한 공연이었어요. 그러고는 2018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매주 공연을 보러 다녔네요."

큰들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은 이제 그에게 유일한 주말 취미다. 단순히 공연만 보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아내와 함께, 때로는 어머니와 함께, 어떤 날은 친구와 함께 주변 경치 구경도 하고,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는다. 나름 주말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인 셈이다.

"그렇게 사람들하고 공연을 보러 가는 과정도 재밌고, 공연 자체도 재밌고, 다녀와서 공연 후기를 쓰는 일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 지난해 4월 하동 화개장터에서 열린 마당극 <역마> 공연 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이우기
▲ 지난해 3월 하동 화개장터에서 열린 마당극 <역마> 공연 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이우기

◇큰들 마당극을 계속 보는 이유 = 지난해와 올해는 블로그에 올린 공연 후기를 모아 <마당극에 빠지다>란 책자를 만들었다.

물론 팔려고 만든 건 아니다. 그런데도 극단 큰들과 몇몇 지인들이 책을 구해갔다고 한다.

책자를 뒤적이다 보니 그가 매번 같은 공연을 보면서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지를 적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늘 맨 앞 가운데 자리에서 관람했었다. 오늘부터는 좀 다른 위치에서 감상해 보자 하는 심정이 없지 않아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다른 각도에서 보노라니, 많은 색다른 점이 보였다.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뒤돌아섰을 때 표정도 볼 수 있었고 마당 뒤쪽에서 달려나올 때 어떤 표정인지도 보였다. 다음 연기할 때 필요한 소품을 아무도 몰래 슬쩍슬쩍 가져다 놓는 것도 보인다. 물론 안 봐도 되는 것들이다. 악사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공연에 집중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악사는 한두 명이 맡는 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이 없을 때 악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필요한 부분만큼 악기를 두드린 뒤 다시 연기하러들 간다. 한 명이라도,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다간 경을 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다." (<2019 마당극에 빠지다> 70쪽)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소한 실수나, 조용하고 은밀하게 서로 챙기는 모습 속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큰들 단원들 사이에 흐르는 긍정적인 기운이다. 이런 기운 속에 그는 어떤 행복감마저 느낀다고 한다.

▲ 지난해 4월 산청 동의보감촌 <효자전> 공연 후 함께 간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우기
▲ 지난해 4월 산청 국제조각공원 <효자전> 공연 후 함께 간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우기

"큰들 단원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정말 재밌게 살고 있고, 우리 것을 지킨다는 자부심도 크고, 모든 공연마다 전력을 기울이고, 일반 관객이든 후원회원이든 진정을 다해 다가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매번 공연을 보면서 온 힘을 다해서 하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행복감을 제가 얻어온다는 느낌이 있어요. 어쩌면 바로 이 느낌 때문에 매주 마당극을 보러 달려가는지도 모르죠."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이 실장에게서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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