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자체에 큰 함의 더해지기도
프로그램 〈불독〉, 정의 표상 되길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고 있는 이들 중 몇몇이 최근 공통으로 다녀온 곳이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베슬(Vessel)'이라는 건물로, 사람이 살거나 머무는 곳이 아니므로 엄밀히 말하면 건물보다는 구조물에 가깝다. 베슬은 밖에서 보면 큰 솔방울처럼 생겼고, 안에는 15층짜리 나선형 계단이 벌집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구조다.

재미있는 지점은, 많은 이가 베슬 사진을 올리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하다'는 뜻의 신조어로, 음식·여행·제품 등이 보여주고 싶을 만큼 아름답거나 흥미로울 때 주로 쓴다. 20세기 '포토제닉'이라는 단어보다 조금 더 과시적이다. 그보다 앞서 인스타그램은 직관적인 화면 배치와 단순한 사용법으로 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채널이 되었다. 그리고 베슬은 세워진 지 1년 만에 인스타그래머블한 존재가 되었다.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 문화가 되는 장면을 보며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특정 기업이나 인물 등 고유명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큰 함의를 얻는 순간, 그것은 보통명사 혹은 관용구가 된다. 배우 '김혜자'라는 이름과 '~스럽다'가 붙어 만들어진 '혜자스럽다'가 어떻게 '가성비 좋은 먹거리'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는지는, 그 고유명사가 흘러온 일련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혜자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실제 '혜자도시락'의 알찬 구성이 만났을 때, 소비자는 비로소 '혜자스럽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송강호가 또 송강호 했네'라는 말은 문법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송강호라는 배우 연기 진짜 잘하네'로 읽히는 새로운 텍스트가 되었다.

최근 내가 가장 많이 매만지고 있는 단어는 '불독'이다. 4월 15일에 있을 총선을 앞두고 <시사라이브 불독>이라는 제목의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이다. 새 프로그램 제목을 '불독'이라고 했을 때, 열이면 열 모두 똑같이 물었다. "왜 불독이에요?" 보통은 "불독처럼 한번 물면 놓지 않겠다는…" "언론의 역할 중에 워치독(Watch Dog·감시자)도 있잖아요" 대답하다가, "출연진 중에 불독 같은 분이 있어서요"라고 답한 날도 있었다.

상표가 너무 유명해 아예 그 제품군을 대표하는 단어가 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호치키스, 브라운관, 포클레인, 샤프…. 약국에 가서 "대일밴드 주세요" 말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불독의 어원을 보면 '소(Bull)를 잡는 개(Dog)'라는 뜻을 갖고 있다. 태생부터 용맹함을 지닌 개라는 뜻이지만, 누군가는 불독 하면 '못생기고 게으른 개'를 떠올릴 수도 있다. 불독이라는 개가 본래 가진 성격적 특성 혹은 사회적 합의를 넘어 옳은 눈을 가진 감시자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보다 먼저 불독이 왜 TV 시사프로그램 제목이 되었는지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뛰어야 할 참이다. 불독이 해태의 아성을 넘어 정의와 공정의 표상이 되는 날을 상상하면서.

하나 더.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린 뒤 '그답다'라고 생각할 때, 그 안에는 어떤 이미지가 있을지 종종 생각해 본다. 불독을 불독답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내 이름은 어떠한 객관성을 지니게 될 것인지 그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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