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위성정당 승인·모의선거교육 금지는 정치 중립 외면"
선관위 구성원 과반 보수성향…논란 사안 '통합당 편들기' 비판 "정치색 웬 말"

지난 열흘 사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발 핵폭탄이 정치권과 교육계를 뒤흔들었다. 선관위는 지난 13일 마땅히 금지해야 할 위성정당을 서류상 창당요건을 갖췄다는 이유로 정당등록을 받아줬다. 반면 마땅히 권장해야 할 초중등학교 모의선거교육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 6일 전면 금지했다. 설마 했던 일들이 모두 현실이 되고 말았다.

선관위의 위성정당 허용 결정으로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이하 통합당)은 제3당들의 몫에서 최소한 10석 이상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선관위는 피해자(제3당들)의 피눈물을 못 본 체하고 탐욕스러운 가해자(통합당)의 편을 들었다. 또한 선관위의 모의선거 금지로 말미암아 학내선거교육 활성화에 제동이 걸렸다.

두 사안에서 선관위는 헌법 원칙 대신 형식 문언이나 대중정서를 앞세워 위헌적 실체를 외면하며 정치중립의무를 위배했다. 위성정당 등록에선 창당서류 형식심사주의를 내세워 특정 정당의 손을 들어줬고 모의선거교육 금지에선 막연한 정치편향교육 우려(교사 불신 정서)에 편승해 정치 의지를 관철했다. 그럼에도 전문헌법기관이 일단 저질러놓은 일이라서 비판은 쉬워도 결정을 번복하게 하는 건 쉽지 않다.

두 현안에서 선관위가 채택한 입장은 현실의 정치지형에서 통합당과 보수언론이 취해온 입장과 다르지 않다. 엄정한 법적 판단에 따른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이심전심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로 판단된다. 두 사안에서 선관위는 의도적으로 통합당의 호위무사를 자임했다고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다. 문제의 선관위 결정은 워낙 근거가 미약해서 오는 3월에 4인, 내년에 2인 등 선관위원 6인이 교체되고 나면 자체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선관위 인적 구성 = 정치와 교육 핵심사안에서 통합당 손을 들어준 일차적 배경은 선관위의 인적 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9개월이 지났지만 선관위는 아직도 박근혜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3월에 4인, 2015년에 2인, 총 6인의 선관위원이 임명됐다. 그 가운데 민주당 추천 국회 몫 1인을 제외한 5인이 박근혜 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장,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몫이었다. 이들 보수성향 위원들의 6년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8년 1월 취임한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도 보수성향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12월에 지명권을 행사했지만 취임 두 달을 갓 넘긴 당시의 대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한 보수성향 대법관들로 채워져 있었다.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9월까지 자리를 지킨다. 요컨대, 중앙선관위의 인적 구성을 보면 총 9인의 구성원 중에서 6인(위원장과 선관위원 5인)이 검증된 보수성향 인물들이다.

▲ 지난 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년 제1차 선거자문위원회의 모습(사진 왼쪽). 13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중앙선관위의 학교 모의 선거 교육 불허 철회를 위한 교육 시민단체 기자회견'. /연합뉴스
▲ 지난 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년 제1차 선거자문위원회의 모습(사진 왼쪽). 13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중앙선관위의 학교 모의 선거 교육 불허 철회를 위한 교육 시민단체 기자회견'. /연합뉴스

굳이 이런 사실을 들춰내는 이유는, 모든 선관위원은 추천기관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최고도의 정치 중립성을 요구받는다는 점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선관위원은 추천권자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의 일반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서는 선관위원들이 법 원칙을 팽개치고 정치 선호를 앞세우며 법 해석 권력을 남용한 혐의가 아주 짙다.

위성정당 창당이 연동형선거제 도입에 맞서기 위한 통합당의 탈법행위 꼼수라면 학교모의선거 반대는 18세 선거연령 하향에 맞서기 위한 통합당의 패배주의적 억지다. 둘 다 해외토픽감이 될 만큼 깨어있는 시민의 비호감도를 높이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지만 통합당은 개의치 않는다. 보수언론이 언제나 통합당의 편을 들며 든든하게 엄호해주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유독 통합당 행태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법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상반되는 찬반 입장에 각각 동일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는 기계적 중립에 멈춘다. 결과적으로 보수언론은 위성정당에 대해선 꼼수냐 묘수냐의 성격 규정과 성패 전망이 엇갈린다는 식의 보도 행태로 기정사실화를 도운 반면 모의선거교육에 대해선 교육적으로나 선거법적으로나 문제 제기가 있다는 식의 보도 행태로 정치쟁점화를 도왔다. 정확하게 통합당이 원하는 바였다.

만약 위성정당 사안에서 언론의 반대 기류가 강했다면 아무리 보수 주도 선관위라도 권리남용금지원칙과 탈법행위금지원칙을 저버리고 정당법의 일개 규정에 지나지 않는 창당요건 형식심사주의를 내세워 통합당의 손을 들어주진 못했을 것이다.

◇위성정당 목적은 부당이득 =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뚝딱 만들어낸 이유는 개정선거법의 연동형 의석 배분을 면탈하고 군소정당 몫으로 설계된 연동비례의석을 가로채기 위해서다. 이는 전형적인 탈법행위에 해당한다. 겉으로는 창당행위에 해당해서 설립 자유에 속하는 합법 행위이지만 속으로는 부당의석을 취하기 위한 개정선거법 면탈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탈법행위를 할 권리는 없다. 위장전입, 위장이혼, 위장폐업, 위장계열사 등 탈법행위를 은밀하게 하는 이유다.

얼핏 보기에는 정당한 권리행사처럼 보여도 그 목적이 법 면탈과 부당이득에 있다면 반드시 권리남용이 돼 금지된다. 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도 마찬가지다. 미래한국당은 탈법행위의 수단이자 권리남용의 산물로서 법의 제국에는 그의 자리가 없다. 그 창당 과정과 운영행태가 이 사실을 웅변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개인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넣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도 최고 3년 징역형까지 처벌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의석(주권)을 도둑질할 목적으로 추진된 공당의 위장 창당은 얼마나 큰 제재를 받아야 마땅할까? 통합당의 위장 창당은 공공연하게 진행된 공개적 탈법행위다. 위장전입과 같은 개인의 탈법행위가 아니라 공당의 탈법행위다. 공당의 공공연한 탈법행위는 개인의 위장전입과는 비할 바 없이 죄질이 무겁고 나쁘다. 물론 이런 역대급 탈법행위를 수용한 선관위는 더 죄질이 무겁고 나쁘다.

◇선관위 흑역사에 기록될 것 = 선관위는 위성정당에 대해서도 유사당명 사용금지나 비례후보 전략공천금지만 내세울 게 아니었다. 위성정당 금지가 헌법과 정당법의 불문율이라고 선언하고 위성정당 창당은 불문율에 위배되는 권리남용행위이자 탈법행위로서 명확하게 금지된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선관위는 탈법행위에 앞장서고 선동하는 거대 공당의 권력 횡포를 방치했다.

선관위가 미래한국당을 정당명부에 등록해준 것은 통합당의 개정선거법 면탈목적과 정당설립권리 남용행위를 모두 적법한 것으로 승인한다는 뜻이다. 어떤 국가의 법질서와 국민의 법 감정도 공당의 공공연한 탈법행위를 공식적으로 승인할 수 없다. 누가 주체이건 탈법목적과 권리남용을 인정해주는 법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정당등록을 받아주기로 선택했다면 정치적 결정이지 법적 결정일 수 없다. /오마이뉴스 곽노현

※글쓴이는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전 서울시교육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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