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출근금지·관찰 지시
시민단체 "지침 악용 부당대우"
관리 사각지대 발생 우려 지적

"정부나 사업체 논리는 중국인 노동자가 알아서 14일간 격리돼 있으라는 것이다. 이는 지역사회 감염병 확산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어디에도 받아주는 곳 없는 노동자에게는 일종의 폭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 때문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데 대해 이철승 경남이주민센터 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에서 춘제 연휴를 보내고 지난 3일 입국한 중국인(40) ㄱ 씨는 2년 동안 일한 경기도 한 업체로 복귀하려 했지만, 사측으로부터 "2주간 다른 곳에 머물다 신종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회사에 연락하라. 경비도 알아서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ㄱ 씨는 모텔을 찾아다녔지만 중국인이란 이유로 거절당했고, 교회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도 교회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답을 들었다.

ㄱ 씨는 막막한 상황을 중국 모바일 메신저에 올렸고 다행히 경남중국교민회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경남중국교민회의 도움으로 3일 기차를 타고 350㎞ 떨어진 창원의 이주민센터를 찾았다.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은 없지만, 현재 임시 쉼터에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경남이주민센터는 사측에 입장을 물었고 "신종 코로나 예방과 감염 확산을 위해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라는 답을 들었다.

고용노동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에 관련 내용이 있다. '국내 입국 후 14일째 되는 날까지 타인과 접촉이나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가급적 휴가·재택근무 또는 휴업 등을 활용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노동부는 동포 대상 방문취업 비자(H-2) 특례고용자와 비전문 취업 비자(E-9)를 발급받아 입국하는 중국인 노동자를 관리하고 있다. ㄱ 씨는 E-9 고용허가 제조업 노동자다.

노동부 관계자는 "증상이 없어도 14일간 업무 배제를 할 수 있는 대상자는 후베이성에서 입국한 다중이용시설 종사자다. 이 외에는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중국을 다녀왔단 이유로 병에 걸린 사람 취급한다는 것은 인권 문제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현재 증상이 없지만 회사문을 닫게 될까 불안하단 이유로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노동법 위반이다. 이는 사업주 필요에 의한 업무 배제로 유급 휴가 처리와 함께 근로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은 1일 평균 2만 8469명이다. 신종 코로나 확산과 정부의 중국 후베이성 입국 금지 등 조치로 중국 입국자 수는 줄고 있고, 지난 5일은 7224명을 기록했다. 이 중 중국인은 5027명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중국 입국자가 지금도 하루에 수천 명이다. 의심 증상이 없는데 이들을 격리할 수 없다. 사업장 우려는 이해하지만, 이들을 국가에서 관리·부담하는 것은 관리 인력과 예산 등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사업주들은 '감염병예방법상 입원·격리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경우 휴가, 재택근무 또는 휴업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지도한다'는 등 애매한 지침을 유리하게 해석해 중국인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 이철승 소장은 "ㄱ 씨처럼 거리로 내몰린 중국인 노동자가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라며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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