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완월초 배움교실 문집
70∼90세 할머니들 글 속
자식들에 하지 못한 말들

할머니들의 글쓰기가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다. 가난해서, 여자라서 글을 배우지 못했던 이들이 만년에야 글을 배웠다.

그리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진솔한 글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전남 순천 할머니들 일기를 담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 2019년)가 그랬고, 전북 완주 진달래학교 할머니들의 그림책 <나를 보고 예쁘게 빵끝>(완두콩. 2019년) 같은 것들이다.

정식 출판물은 아니지만 최근 창원 완월초등학교에서 발간한 2019년 배움교실 졸업기념문집 <촛불 앞에 뜨거운 기도>에도 이런 할머니들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완월초 배움교실 졸업문집은 70~90세 할머니들이 3년간 초등 과정을 공부하며 쓴 일기, 편지, 시를 모은 것이다. 할머니들이 글을 배운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자모순을 기억하기 위해, 아라비아 숫자를 기억하기 위해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자기 배 위에다 그 자모순, 아라비아 숫자를 몇 번이고 쓰다가 울먹이며 잠 속으로 빠지기도 했답니다."

이들을 지도한 조현술 동화작가의 말이다.

이들 어르신에게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동인지 김순선(75) 할머니의 다음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하루, 이틀, 사흘 가는 달력이 눈에 보여요/ 내 이름자 있는 우리 집 문패도 보여요/ 일기장에 고물고물 기어가는 이야기까지도 보여요 (중략) 조카집에 가는 버스를 찾아 탈 수 있어요/ 딸집에 가는 버스도 가려 탈 수 있어요." ('문해교실 졸업반' 중에서)

민윤점(79) 할머니의 수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봉사가 눈을 뜬 것처럼 이 세상이 제법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하면 진작 공부를 시작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된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눈을 뜬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고 행복한지 모른다." ('졸업을 하면서' 중에서)

또, 할머니들 편지에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움이 가득하다.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글로 풀어져 나온 것이리라. 김갑순(77) 할머니의 편지를 보자.

"너가 넉넉하지 못한 우리 집에 시집을 와서 알뜰살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한없이 사랑스럽구나. (중략) 남에게 챙겨주기도 하고 남의 사랑도 받아들고 올 줄을 아는 것을 보면 우리 예쁜 며느리 그 모습이 참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사랑하는 며느리에게' 중에서 )

"가정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핑계로 너에게 좋은 옷, 좋은 신발 그리고 맛있는 것 한 번 먹여본 적이 없구나. 손잡고 나란히 걸으면서 이것저것 마음대로 사주어 본 것 하나 없구나. (중략) 시간이 날 적마다 이 엄마에게 전화 한 번씩 해주렴. 나도 나이가 일흔 여섯에 접어드니 살아갈 날이 그렇게 많이 남은 것 같지 않구나. 아직 정신이 맑을 적에 우리 아들 전화를 받고 웃고 싶구나." ('너무, 너무 사랑하는 내 아들아' 중에서)

배움교실은 일종의 성인문해교실이다. 여러 사정으로 학교를 아예 다니지 못한 어르신들이 초등1단계(1~2학년 수준), 2단계(3~4학년 수준), 3단계(5~6학년 수준) 3년을 공부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국 곳곳, 자치단체나 학교 등에서 비슷한 문해교실을 열고 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막 글을 깨친 어르신들이 평소 말하지 못한 마음을 공책에 꾹꾹 글자로 눌러쓰고 있을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