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공포 휩싸인 인간 군상
'코로나 사태' 예견한 듯 닮아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도시. 거리에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고, 그나마 보이는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감염되고, 죽어나간다.

가짜뉴스는 가뜩이나 두려운 이들에게 공포라는 기름을 붓고, 불안감은 이기심과 적대감으로 변한다. 이성적 판단 기능이 마비된 이들로 사회질서는 무너져가고, 한쪽에서는 이들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자 한다.

#5일 오후 8시 현재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는 모두 19명이다. 지난달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보름 만이다. 중국에서 시작한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현재 감염 국가는 필리핀, 싱가포르,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 28개국으로 늘었다. 사망자는 492명, 확진 환자는 2만 4500명을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마스크, 손소독제 등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자 정부는 이를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그린 2011년 작 <컨테이젼>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겹친다.  /스틸컷
▲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그린 2011년 작 <컨테이젼>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겹친다. /스틸컷

같은 상황을 표현한 것 같지만 두 이야기 간 시차는 무려 9년이다. 두 번째는 오늘의 대한민국 모습이고, 첫 번째는 2011년 9월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내용이다.

영화 제목인 컨테이젼의 의미는 'a disease spread by close contact' 즉, '접촉으로 인한 질병의 전염'이다.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아무도 만나지 말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 것을 강조한다.

영화는 이튿날(DAY2)부터 시작한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 베스 엠호프(귀네스 팰트로)는 집으로 돌아온 후 감기 증세를 보이다 발작을 일으킨다.

남편인 토마스 엠호프(맷 데이먼)가 발견하고는 곧장 병원으로 옮기지만 의사도 손을 쓸 새 없이 목숨을 거둔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하는 토마스. 전화 한 통을 받는다.

▲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그린 2011년 작 <컨테이젼>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겹친다.  /스틸컷
▲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그린 2011년 작 <컨테이젼>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겹친다. /스틸컷

토마스 아들이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토마스가 집에 도착해 아들을 샅샅이 살피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한순간에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내고 슬픔과 혼란에 휩싸인다.

그 사이 홍콩과 일본, 시카고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자들이 발생한다. 기침과 고열이 나는 등 증세는 감기와 비슷하지만 치사율이 25%가 넘는다.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원인 불명의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질병본부와 WHO(세계보건기구)는 원인 추적과 백신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첫째 날(DAY1) 베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영화 <오션스> 시리즈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극적인 이야기 구성이나 연출보다는 사실적 표현에 집중한다. 유명 배우가 대거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도 든다.

영화는 대재앙 앞에 눈물 나는 가족애나 인류애보다는 인간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보여주는 인간군상을 덤덤하게 조명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들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대하는 우리와 주변인, 미디어와 닮았다.

▲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그린 2011년 작 <컨테이젼>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겹친다.  /스틸컷
▲ 전염병 공포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그린 2011년 작 <컨테이젼>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겹친다. /스틸컷

재앙을 이용하려는 기자 출신의,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플루언서' 앨런 크럼위드와 제약회사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배우 '주드 로'가 연기한 앨런은 현실에서도 문제가 되는 '가짜뉴스' 생산자이기도 하다.

방송에 출연해 국민을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백신을 맞으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하는 아내에게 백신을 놓아주는 질병본부 엘리스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 죽어나가는 사람들과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가짜뉴스에 겁먹고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 지하 벙커로 숨어버린 대통령.

물론 이 국면을 해결하고자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 모습도 있다.

영화에는 드라마틱한 한 방은 없다. 하지만 각 인물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입장 차이를 관찰하고 비슷한 시기를 보내는 지금, 우리와 극중 캐릭터들을 비교해본다면 영화는 더 가깝게 다가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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