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어른거리는 오만함의 그림자
박근혜 정권 왜 몰락했는지 상기해야

흔히 선거는 인물과 정책의 승부라고 하지만 기자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낮춰야 할 때 낮출 줄 알고, 반성해야 할 때 반성하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기본처럼 보이지만 권력의 힘이나 승리감에 도취되면 언제든 놓칠 수 있는 것들이다. 가장 경계할 건 오만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과 2016년 새누리당 등 역대 총선에서 압승이 예상되던 정치세력이 대역전을 당한 과정에는 늘 오만이 있었다.

4·15 총선에 모든 걸 걸다시피 한 현 여권에 지금 필요한 경고등도 그것이다. 선거판 전체를 삼킬 수도 있었던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문석균 씨의 아버지 지역구(경기 의정부 갑) 대물림은 문 씨의 사퇴로 일단락됐지만 첩첩산중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만들어준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입심'이 가관이다. '기소쿠데타'이자 '과거 하나회에 비견될 반헌법적 작태'라며 검찰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향후 출범할 공수처 수사를 통해 저들(검찰)의 범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억울하거나 반박 근거가 있으면 검찰에 나가 밝히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공수처 수사라니. '정권 반대세력 탄압도구 아니냐'는 야당의 걱정과 비판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었다. 이런 입장을 최 비서관 자신도 아닌 대통령 대변인이자 청와대의 입인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덩달아 흥분해' 대신 읽었다. 이건 최 비서관 개인을 넘어 문재인 정권 전체가 저열해지는 꼴이었다.

그랬던 청와대가 지난달 29일 검찰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관련 무더기 기소에는 차분한 대응을 했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이 주도한 청와대의 조직적 범죄로 사실상 규정했음에도 "검찰 기소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 국민이 판단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국민 여론이 얼마나 안 좋은지 이제야 상황 파악을 한 것이다. '윤석열 사단 학살'로도 불린 지난달 검찰 인사 등이 청와대 수사 방해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청와대에 '검찰과 충돌을 자제해달라', '기소된 비서관 신병 처리를 서둘러달라'는 요청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늦게나마 이런 자정기능이 작동한 건 아직 국민 눈을 무서워할 줄 알고, 갈 데까지 간 건 아니라는 증거다. 아직 현 정권에 희망이 있다는 신호다.

한번 돌아선 민심은 웬만해선 회복하기 어렵다.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대선주자를 전면 배치해봤자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밖에 안 된다. 그래서 지금 자유한국당이 '현역 의원 절반 물갈이', '당대표급 험지 출마' 등 갖은 수를 던지며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의 심판을 앞둔 조국 전 장관을 향해 '마음의 빚' '이제 그만 놓아달라' 운운했던 문 대통령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측근과 강성 지지층만 챙기다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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