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내 기록연구사 대부분
1인·순환근무 탓에 전문화 부재
통합기록관 설치·운영 통해
열정 불태울 업무기반 갖춰지길

온 나라가 정치적 이슈로 떠들썩하기 시작했던 지난해 8월, 기생충학자인 단국대 서민 교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딸의 논문 제1저자 의혹과 관련하여 자신이 익명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상략) 여기서 나쁜 놈은 누구일까. 제도를 잘 이용한 조국 딸과 부인? 논문을 같이 써준 교수? 아니면 특권층에 유리하게 입시 판을 짠 정부? 아무리 봐도 난 세 번째 같다." 또 논문 논란이 핀트를 잘못 맞추고 있다고 말하면서 "조 후보자와 장 교수보다 이런 입시 관행이 가능하도록 한 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라고 밝혔다. 당시,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생뚱맞게 내 전공이자 생업인 기록관리를 떠올렸다.

▲ 90년대 추정. 교실에서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학생들.
▲ 90년대 추정. 교실에서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학생들.

◇순환근무와 1인 근무

지난해 9월 4일,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입법 예고된 법령의 여러 조항 중,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논의의 중심에 섰던 내용 가운데 하나가 '기록관 설치 기준의 정비'였다. 그동안 법령에는 공공기관마다 1개 기록관 설치를 의무화했으나, 이와 같은 일률적인 기준이 조직의 규모, 업무 환경 등 저마다 다른 기관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실제 기관에 따라 기록관과 기록관의 전문인력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번 개정(안)의 '기록관 설치 기준의 정비'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핵심은 통합기록관의 설치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통합기록관이란 조직적으로 통합이 가능한 여러 기관의 기록관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가령, ㄱ시도교육청과 ㄱ시도교육청 관할에 있는 교육지원청의 기록관을 통합하여 운영하거나 관할이 같은 교육지원청을 권역별로 묶어 기록관을 통합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록관이란 기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공공기관마다 설치해야 하는 기록물관리기관이다. 2000년 기록물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중앙부처를 필두로 기록관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기록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기록관에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기록물관리를 위해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라 불리는 기록연구사를 채용해야 한다. 중앙부처는 2005년, 시도교육청은 2007년 기록연구사를 채용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일부 채용이 더딘 교육청을 제외하고는 많은 수의 연구사들이 현업에서 기록관리에 힘쓰고 있다.

▲ 1982년 11월 시청각교육이 한창인 교실.
▲ 1982년 11월 시청각교육이 한창인 교실.

기록연구사는 기록관에 근무하는 기록관리 전문인력이다. 기록연구사는 기록관리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만든 기관과 조직의 역사도 꿰뚫고 있어야 기록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기록관을 둘러싼 조직 환경에서 이것을 구현해 내기는 쉽지 않다.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경우 기록연구사는 인사주기에 따라 순환근무를 해야 한다. 물론 다른 직렬도 마찬가지이지만, 전문인력과 관리대상의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기록연구사의 경우 한 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업무환경이 행정직렬과 다른 전문직렬보다 더 많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 기록연구사는 기록관에서 혼자서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소위 말하는 1인 기록관 체계이다. 혼자 근무하는 기록연구사는 소속된 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업무분장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록관리를 위해서 채용된 연구사에게 법으로 보장된 업무 외에 일반행정 업무가 아무렇지 않게 맡겨진다. 채용 초기 기록연구사에게 배차업무를 맡겨 언론에 보도되는 촌극도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기보다는 오히려 굳어졌다.

기록의 전문적 관리는 기록연구사가 습득한 지식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업무적인 경험이 공유되고 동반되어야 하며 지속적인 학습과 연구, 체계적인 훈련을 바탕으로 획득된다. 현재의 주기적인 전보의 순환 근무체계와 1인 기록관 근무체계에서는 전문인력의 전문성을 키우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다.

▲ 종합 2위를 했던 1986년 9월 제15회 전국소년체육대회.
▲ 종합 2위를 했던 1986년 9월 제15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통합기록관 설치 운영

이와 같은 이유로 현장의 연구사를 중심으로(특히 교육청 소속 연구사) 오래전부터 통합기록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찬반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마침내 통합기록관 설치 운영을 위한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통합기록관이 설치되면 주기적인 전보에서 오는 한계를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고 1인 기록관 체계도 탈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조직적 측면에서 기록관리를 혁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멀다. 현장에서 통합기록관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기다린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기록관리와 기록관에 대한 인식은 낮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열악하지만, 내부적인 의견 조율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이번 개정(안) 마련을 두고 통합기록관 설치 규정 마련에 대한 기록연구사들의 의견이 분분했을 때 찬성 의견을 견지한 나에게 고참 연구사들이 승진을 위함이 아니냐는 불편한 말도 전해 들었다. "내세우는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해서 그 주장을 반대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주장이 합리적인가, 올바른 방향인가,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오래전 한 TV 토론회에서 당시 대통령의 정책을 두고 반대하던 상대방을 논박했던 장면이, 이 말을 들으며 떠올랐다.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 소방관에게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도록 소화장비가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하듯, 기록연구사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기반부터 갖추어져야 한다. 뛰어난 업무 능력과 함께 투철한 사명감, 무한한 열정으로 업무에 임하는 동료들을 보면 늘 존경스럽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어떤 분야보다 기록관리 영역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일을 하는 데 있어 근무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동료가 그와 같을 수 없다. 의욕은 넘치는데 업무환경이 받쳐주지 않거나 근무조건만 더 잘 갖추어진다면 가진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기록관 혁신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 80년대 추정. 입학식 모습. /경상남도교육청 기록관
▲ 80년대 추정. 입학식 모습. /경상남도교육청 기록관

이와 같은 토대 위에서 기록관리가 지향하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더 철저하게 기록을 생산하고 남기는 것, 그것을 위해 업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 남긴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시스템과 연계하는 것,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기록을 공개하고 활용하는 것 등, 변화된 기록관 체계에서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소속되어 있는 경남교육청의 박종훈 교육감은 일 잘할 수 있는 조직구조와 인사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은 좋은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품질관리 분야의 대가, 조지프 주란(J.Juran)의 말이다. 묵은 조직과 제도, 낡은 방식을 새롭게 바꾸어 좋은 변화가 우리의 조직과 업무 곳곳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에 우리의, 그리고 나의 기록관리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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