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간병과 생활고 겹쳐 극단적 선택
노인 부양·간병인 휴식 국가정책 절실

지난 설날 연휴에 밀양에서 치매 노모를 돌보던 40대 아들이 노모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들은 구속됐다. "40대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결혼도 못 해 자신의 신변과 관련해 열등의식이 심한 상태였다"고 경찰은 말했다.

병환이 깊은 부모를 오랫동안 간병하던 자식이 지쳐 자기 삶을 비관하면서 환자를 죽이거나 함께 목숨을 끊는 일이 해마다 잦아지고 있다. 대부분 70~90대 부모들은 전 재산을 다바쳐 집착하다시피 키운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40~60대 자식들은 이런 부모 마음을 알기에 잘 모시려 다짐한다. 하지만 부모 병환이 깊어질수록 자식 중 하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다. 만약 아픈 부모와 돌보는 자식의 생활고가 겹치면 간병하는 자식은 자신의 삶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맞게 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지난해 사건을 들춰보면, 2월 서울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아들이 10년간 돌보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의 몸 상태가 나빠지면서 아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7월에도 어느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아픈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해 온 70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편은 20년 전부터 심장 질환을 앓아온 아내를 간호했는데, 아내가 말기 암 판정까지 받아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졌다. 9월엔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80대 노모와 지체장애가 있는 50대 첫째 아들이 피살된 채 발견된 후 둘째 아들도 변사체로 발견됐다. 부모·형제가 모두 장애가 있어 간병을 해온 둘째 아들이 처지를 비관해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됐다.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 대학을 졸업했어도 일자리가 없거나 부모 간병 때문에 실직하면서 경력이 단절된 자식, 생활고에 힘겨운 부모와 자식의 삶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복지사각지대. 이런 상황들은 이미 경험했거나 조만간 닥칠 내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갈수록 사회적 노인 부양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2017년 기준 노인빈곤율은 43.8%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노인빈곤율은 국내 65세 이상 인구 중 중위소득의 50%가 되지 않는 인구 비율을 말한다. 반면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8년 우리나라 65세 생존자의 기대여명은 남자 18.7년, 여자 22.8년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삶의 질을 담보할 사회적 제도는 실효성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고령자의 건강한 노후를 책임지는 정책,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들을 지원하는 정책, 자식을 포함한 간병인에게 휴식을 줄 국가 정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15년 전과 똑같다. 친정엄마를 간병하고자 퇴직할 수밖에 없었고, 친정아버지를 돌볼 간병인에게 한 달에 한 번 휴식을 줄 수밖에 없었던 당시 내 현실보다 더 나아진 게 별로 없다. 고령화 정책에 쏟아붓는 예산은 어디로 스며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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