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변화
유연·능동적인 사회경제시스템 절실

자연계는 에너지 최소화 과정을 통해 안정화 상태인 평형을 유지한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물리학에서의 '섭동이론(perturbation theory)'을 단순히 표현하면, 운동에너지와 퍼텐셜(potential)에너지로 구성된 특정한 계의 평형상태를 정의하는 해밀토니안(hamiltonian)이 외부 영향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에너지가 안정화되어 있는 계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 상호작용을 해 원래의 계는 미소하게 변한 상태를 뜻한다. 만약, 외부 자극이 단발성으로 끝난다면 유입된 에너지를 방출하는 안정화 과정을 통해 본래의 평형상태로 돌아가지만, 지속해서 섭동이 작용하면 원래의 계는 변화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가령, 태양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만유인력으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지만, 지구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행성의 영향으로 아주 근소하지만 원래 운동궤적에서 조금 어긋난다.

하나의 예로, 19세기 중반 천왕성 궤도를 관측하던 천문학자들은 만유인력 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규칙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천왕성 운동궤적에 영향을 준 섭동을 해석함으로써 태양계의 8번째 행성인 해왕성을 발견한다.

섭동 현상은 우리네 일상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자동차가 도로에 설치된 '둔턱'을 넘을 때 가볍게 몸이 들썩이거나 고요한 촛불이 경미한 바람에 요동치는 현상,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현상 등은 모두 광의의 섭동 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자연생태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진화'라는 자기 혁신도 따지고 보면 지속적인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장구한 시간을 통해 각 개체가 생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섭동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인류 역사 흥망성쇠를 연구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가 성취해온 찬란한 문명은 끊임없는 외부의 도전에 능동적으로 응전한 섭동의 결과물로 해석했다.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조직이나 시스템도 생물학적 진화법칙과 구성원들 간 복잡한 상호작용에 기반한 섭동 현상에 의해 발전해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금은 승자독식의 4차산업혁명시대, 거대한 변화와 마주한 섭동의 시대다. 하루가 멀다고 진화하는 와해적 혁신기술은 기존 사회·경제시스템을 빠르게 혁신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브렉시트 등 전 세계적인 자국 우선주의 사조는 안정화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착각한 우리 경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파급력 있는 섭동으로 작용했다.

변화라는 시대정신을 간과한 무사안일과 경직된 사회시스템으로 우리 경제가 받은 상처가 깊고 후유증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쓰나미급 섭동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5G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섭동 그물망으로 초연결되어 있어서 지구촌에서 불어오는 거센 변화의 바람을 더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작금은 변화가 필요한 섭동의 시대다. 생존하려면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려면 우리 사회가 섭동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조직 및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바닷가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는 하찮은 조약돌 하나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세찬 파도에 뒤엉켜 부딪치고 깨지는 고된 섭동의 시련을 이겨냈음을 냉철히 곱씹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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