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건물, 근대건축물로 보존
진해 예술진흥·발전 크게 기여

'피아노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진해 출신 이월춘 시인은 고 유경아(54·사진) 흑백 대표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천생 피아니스트, 음악가, 연주자로 기억되는 유경아 대표가 지난 28일 오후 11시 41분 우리 곁을 떠났다.

온몸이 피아노 선율로 가득했던 유 대표. 하지만 그이 앞에 꼭 붙는 수식이 있다. '유택렬 화백의 둘째 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창원 진해 문화공간 '흑백'을 놓지 못해 20년 넘게 지킴이를 자처한 그다.

가족 반대에 부딪히고 '흑백' 간판을 내리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 도움으로 2015년 '흑백'이 창원시 근대건축물로 지정됐다. 지난해 2층에는 '유택렬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달 초 만난 유경아 대표는 근대건축물로 지정하도록 한 것은 자신이 없어도 흑백이 보존될 수 있도록 머리를 쓴 것이라고 했다.

지난 1년 유 대표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와 싸우는 동안 미술관은 방치 상태에 가까웠다. 그는 개관 1주년을 맞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흑백을 옛 모습으로 돌려놓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18일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개관 1주년 기념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은 그의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음악에서만큼은 지독하리만큼 엄격했던 사람. 주변인들은 유 대표를 어떻게 기억할까. 유택렬 화백 제자인 안성영(57) 씨는 마지막 연주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사실 작년 7월 이미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놀라웠던 건 항암 치료로 몸이 안 좋으니 공연을 연기하라고 말렸는데도 연주를 하더라. 천생 연주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고인은 흑백을 지키느라 힘겹게 지내면서도 장애인복지관과 병원 등을 찾아 틈틈이 자선 공연을 벌였다.

안 씨는 "피아니스트가 무료 공연을 한다고 비난도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연주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관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힐링이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유 대표가 낯가림이 심해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친해지면 누구보다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 순수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전점석 흑백운영위원회장은 유경아 대표가 아버님에 대한 마음이 애틋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유 대표가 김미윤 시인이 쓴 아버지 추모 시를 받고는 30분 만에 곡을 완성한 일화를 떠올렸다.

"떠나고 남는 것 또한 쉬운 일 아닌데/ 목청껏 부를 수 없어 그리움은 멀고/ 바랜 인연끼리 흑백 사진첩에 얽혀/ 추억따라 시린 마음 되어 쌓일 때면/ 색인생 살다간 북청 사나이 떠올라/ 내 허기진 그곳엔 종일 벚꽃이 진다."('흑백에서' 중에)

전 회장은 "마지막 공연 때 참석했다. 유경아 대표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작곡과 유 화백이 사랑했던 베토벤 곡을 연주했다. 운영위원회장이 되고 첫 공연이라 인사말을 시키더라. '지난해 유경아 공연을 자주 못 봐 아쉬웠는데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꼭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나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장례는 언니 승아 씨가 귀국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인은 창원 진해 세광병원에 안치돼 있다. 문의는 전점석 흑백운영위원회장(010-3864-0833)에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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