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마음 바쁜 사람들이 많겠지만 명절이 반갑지 않은 여성도 적지 않다. 여성의 명절 가사노동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문제다. 여성가족부가 설과 추석을 앞두고 전개하는 '성평등한 명절 보내기' 캠페인도 이제는 정례화되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차례상 차리는 일을 여성에게만 떠넘기거나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대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일에 여성들이 종일 붙들려있는 명절 문화를 바꿀 때도 되었다.

현재의 제사나 차례 풍속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니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사치스럽고 호사스럽게 조상을 기리는 일은 임금에게조차 검약을 강조한 조선시대 유가의 정신에 맞지 않았다. 호화스럽게 제사를 지내고 싶어도 농본국가에서 소를 잡는 일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등 물자 공급의 제한이 따랐던 시대였다. 누구나 자신의 조상이 양반임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제례를 지낼 수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신분제가 무너지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21세기 한국인들은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근대 풍습을 전통이라고 믿으며 억지로 고수하고 있는 꼴이다.

그럼에도 남존여비를 들먹이며 여성의 제사 노동 전담을 전통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에게, 남성이 지금처럼 제사의 구경꾼으로 그치는 것은 전통과 전혀 관계없음을 일러둔다. 유가 전통에서 남성들은 제사의 주관자로서 책임이 막강했다. 제사상에 올릴 품목을 철저히 점검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제문을 짓고, 배고픔을 참으며 자정 넘어 새벽까지 의식이 복잡한 제사를 지내는 등 여성의 노동만큼 고되지는 않더라도 제례에 몸소 참여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기는 하다. 지난해 한국노총이 조합원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사후에 자손들이 자신의 제사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한 응답은 남성 16.7%, 여성 2.4%로 나타났다. 제사 문화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유지되더라도 시대의 추세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상차림이 간소화되고 고정된 성 역할의 구분 없이 가족 구성원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특정 성의 강요된 희생 때문에 가능해진 화려한 명절 밥상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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