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차·예쁜 집은 부럽지 않다
여유를 누리지 못해 우울할 뿐

지리산 자락에서 버섯 농사를 짓는 밀양댁은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 기상예보관이 되었다. 날이 끄무레하거나 비가 오면 오십견으로 고장 난 어깨는 아예 둘러 빠진다.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뚜닥딱 마른 장작이 불에 튀는 소리가 나야 오금이 펴진다. 병원엘 가면 한결같은 소리가 쉬면서 요양을 하란다. 맞는 말이지만 속 모르는 진단이 살짝 얄밉다.

내일모레가 설인데 대목에 맞춰 키운 느타리버섯은 비 온 뒤에 죽순이 무색하게 빨리 자란다. 머리를 내밀자마자 어느새 갓이 펼쳐져 상품성이 떨어진다. 쉬면서 요양은커녕 등짝이 구들 구경할 틈이 없다. 이렇게 뼈 빠지게 지은 농사 제값이나 받으면 좋으련만 풍년이면 폭락이고 흉년이면 폭망이니 농협 빚은 한 철 멸구 고손자 보듯 새끼에 새끼를 친다. 일손이 없어 두엇 들인 외국인 일꾼들 찬거리 사러 들른 읍내 채소 가게에서 시들어 꼬부라진 느타리 봉지에 붙은 경매가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표가 속까지 뒤집는다.

산이네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 시집와서 단 하루도 곤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남편은 젊은 날 밥술이나 뜨게 했던 일을 외환위기 때 접고 빈손으로 대기업 하청업체 노동자가 되었다. 본사 정규직과는 차이가 컸지만 힘들고 위험한 막일이라 최고 시급을 받으며 잔업과 철야에 주말 휴일 없이 일하면 땟거리 걱정은 잊었다. 그런데도 살림은 쪼그라든다. 해마다 최저임금은 몇백 원에서 천 원 사이로 오르는데 회사는 늘 어렵다며 동결 아니면 껌 사고 받는 거스름돈 수준이다. 20년 전 최고 시급을 받던 숙련 노동자가 최저임금 근처로 주저앉았으니 맞벌이로 거들어 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한 푼이 아쉬우니 낼모레 정년인 남편은 다 늙어 야간근무를 자원하면서 저 좋아 나섰던 바깥 활동도 모두 접었다. 가게에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산이네는 이리저리 뒤집어 보던 느타리 봉지를 결국 슬며시 내려놓고 나온다.

송이 엄마는 시장통 먹자골목에서 시부모께 물려받은 작은 밥집을 꾸려가고 있다. 한결같은 맛을 내어 오랜 단골이 많고 방송에도 몇 번 나왔던 터라 꽤 알려진 밥집이다. 점심때면 바깥 골목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고 갈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 그렇지만 큰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시장통 먹자골목이 으레 그렇듯 비싼 고급 요리 파는 곳은 아니다. 가끔 시장 나들이 나온 어르신들 쌈지나 음식이 다 식도록 열띤 갑론을박하는 대학생 알바비, 건설 노동자 하루 품삯에 버겁지 않은 밥값이다. 그렇다 보니 계산대 돈 통에 들어간 돈이 은행 금고 구경하기가 나라님 만나기보다 힘들다. 다음날 새벽이면 바로 장마당에 모두 뿌려지기 때문이다. 푸성귀 이고 나온 할머니 줌치나 어물전 아줌마 허리춤 전대로 찾아간다. 요즘은 장마당으로 나가는 그 돈도 턱없이 줄었다. 채소며 생선값이 올랐지만 밥값을 그대로 받아도 당최 손님이 들지 않는다. 새벽부터 나와 장사 준비를 하고 종일 앉아 있어도 파리채만 바쁘다. 다들 힘든지 눈요기 코요기만 하며 지갑은 열지 않고 지나간다.

밀양댁은 고급 차에 정원 예쁜 집은 부럽지 않다. 노는 날 놀고 쉬는 날 쉬어가며 일해도 먹고 사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산이네는 똑같이 먹는 하루 세끼 그들의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벌이보다 여전히 높은 엥겔지수에 속이 상한다. 송이 엄마는 번듯한 가게는 부럽지 않다. 단 하루도 비린내 나는 앞치마를 벗어 놓을 틈이 없어 우울하다.

아내가 가난한 것은 못 먹고 못 입고 못살아서가 아니라 그들보다 못 누리기 때문이다. 어디 공연장에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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