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에게 전래동화 수업
뜻밖의 위로·용기 얻은 시간
마산도서관으로부터 "창원시 마산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결혼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문화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떤 수업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한국 전래 동화 읽기를 하기로 했다. '흥부 놀부', '혹부리 영감', '콩쥐 팥쥐' 등 수업 때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세계가 펼쳐졌다.
이주 여성들과 함께하는 전래 동화 읽기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가장 우선적인 효과는 한국 문화 이해이다. 옛이야기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한국 문화의 바탕을 아는 것은 한국 생활을 하는 데 무척 도움 되는 일이다.
그리고 당장 눈앞의 의미로는 수준 높은 한국어의 다양한 어휘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전래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어휘교육을 할 때 아주 유용하다. 평소 쓰지 않는 다양한 낱말들을 책을 통해 읽고 배우며 생각의 너비가 커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어 학습패턴을 보면 대부분 초급단계 습득 후 학습 중단이란 형태를 지닌다. 기본 교재가 5단계까지라면 대부분은 3단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3단계 정도만 마쳐도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 공부보다는 돈벌이에 더 관심을 두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이 한국어 교육 현장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에, 나는 결혼이주민 대상 강의에 전래동화를 자주 이용하는데 꽤 효과를 얻고 있다.
결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전래동화 읽기의 또 다른 효과는 바로 엄마가 배운 것을 아이에게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꽤 문화 수준이 발달한 편이고,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주 여성들 출신 국가는 이런 분위기가 일반화되지 않아 책 읽기 중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사용한 활동지를 나누어 주면서 "집에 가서 꼭 아이랑 함께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아이의 인지 발달은 물론이고 엄마와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정말 뜻하지 않은 효과를 한 가지 더 발견했다. 바로 마음의 정화, 소위 심리적 카타르시스 효과다.
'효녀 심청'으로 수업할 때였다. 심청이 인당수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한 수강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난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이 심청이가 저인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급기야 서로 껴안고 한동안 눈물들을 흘렸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연꽃 속에 솟아오른 심청이의 뒷이야기를 읽어주었다. 심청의 궁전간택과 잔치, 그리고 아버지가 눈뜨고 심청을 만나는 장면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동화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울음을 그친 그녀가 말한다. "선생님, 맞아요. 끝난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괜찮아요."
그녀들의 삶이 모두 심청전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삶이 자주 우리를 배반하더라도 아직은 끝난 게 아니다. 그래서 이 땅에 시집온 심청이들은 진흙탕같이 비루한 삶이 연꽃 한 송이를 피워낼 그날을 기다리며 고난을 견딘다. 그들의 땀에 서늘한 바람 한 자락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책을 들고 이주여성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