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크로키'모임 10년째
누드모델 서자 긴장 팽팽
20분에 10장…매력은 몰입

미디엄 템포의 경쾌한 팝송이 흐르자 모델 주위로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하얀 종이 위 목탄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나아간다.

방금 전 커피와 빵을 나눠 먹으며 호탕하게 웃던 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하나같이 먹잇감을 찾는 매의 눈으로 모델을 노려본다. 크로키는 짧은 시간 안에 대상의 특징을 잡아 빠르게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음악 장르와는 상관없이 장내에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몇 개의 곡선이 교차하자 어느새 인체의 아름다운 굴곡이 드러난다. 모델이 몸을 움직여 포즈를 바꾸자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손들은 일제히 목탄을 내려놓고 종이를 뜯어 바닥에 내린다.

▲ 창원 '라인크로키' 활동 모습.  /김해수 기자
▲ 창원 '라인크로키' 활동 모습. /김해수 기자

20분가량 진행된 첫 타임, 10장의 그림이 쌓였다. 창원 봉곡학습센터에서 1주일에 한 번, 그렇게 10년 가까이 이어온 크로키 모임 '라인크로키' 회원들을 만났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자발적 모임을 유지해 온 비결이 궁금했다.

'라인크로키'는 1년에 1번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시가 7회째였는데, 모임은 그 이전부터 이어졌다. 회원은 최근까지 10명이었다가 2명이 합류했다.

회원 구성은 다양하다. 취미로 10년 넘게 그림을 그린 사람부터 미술 전공자와 현재 활동하는 작가도 포함됐다. 연령대도 30대부터 70대까지 고루 분포했다. 4~5년 전부터는 경남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공태연 작가가 참여해 도움을 주고 있다.

총무 역할을 맡은 엄미향 씨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육아 등으로 오랜 기간 크로키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우연히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크로키 수업에 참여했다 모임을 알고 함께하게 됐다. 그 세월이 약 7년이다.

엄 씨는 크로키 매력이 '몰입'이라고 했다. 그는 "나이가 50대가 되다 보니 이렇게 몰입할 일이 없는데 2~3분 동안 초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쉽게 느끼지 못하는 크로키만의 매력에 빠져 모였지만 위기도 있었다. 회원들이 직접 모델과 장소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부터 이용하고 있는 봉곡학습센터는 대관료가 저렴한 편이지만 이전에는 전세, 월세를 내가며 공간을 유지했다.

엄 씨는 "주택 반지하에서 모임을 했던 적이 있는데 겨울에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난로를 몇 개나 켰는지 모르겠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누드라는 특성상 모델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구한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전문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협회와 계약해 서울, 대구, 전남 등 전국에서 온 프로 모델과 작업하고 있다.

▲ 창원 '라인크로키' 활동 모습.  /김해수 기자
▲ 창원 '라인크로키' 활동 모습. /김해수 기자

그 사이 많은 크로키 모임이 생겼다 사라졌지만 '라인크로키'는 살아남았다.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사람이다.

엄 씨는 "많은 회원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도 하고, 여기서 나가서 따로 모임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임 운영이 어려웠을 때도 3~4명이 꿋꿋하게 버텨준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함께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해온 세월, 그것이 든든하고 단단한 바탕이었던 것이다.

모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4타임으로 구성된다. 그림을 전공한 사람은 물론 초보자도 자신의 속도로 얼마든지 참가할 수 있다. 문의 라인크로키(010-5165-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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