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가치는 내가 작아지는 것과 비례
목소리 높여 싸우기만 하면 되레 멀어져

지난해 우리 사회는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 등의 이름으로 '태극기', 그리고 '촛불 진영'이 박 터지게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해를 넘긴 지금에도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목소리만 높이면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격하면 격할수록 초심에서 멀어지고, 이기려는 생각이 앞설수록 판단은 흐려지기 마련인데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과 같은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만약에 이와 같은 것들이 순수하고,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것과 통하고, 시작과 끝이 하나이고, 신의 다른 모습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지금 우리들이 아무리 발광을 한다 하더라도 헛발질을 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아서 투쟁을 통해서 쟁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정이지 결과라 말할 수 없는 것은 쟁취한 민주주의 또한 다른 투쟁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이렇게 부실해도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은 온전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크고, 정치·경제·사회·문화조차도 넘어서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나에게로 끌어당기거나 나에게로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추어야 하고,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은 철저하게 나를 내려놓고 비우는 것으로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내가 지는 것입니다.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이신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은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만민들에게 열려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의 실현은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하고, 십자가 없는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은 구호나 다른 뭔가를 채우려는 음모나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너무나 똑똑해서 여론이라는 힘으로 이 나라는 물론이고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까지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자유·정의·평화·통일·사랑은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과는 반비례해도 내가 작아지는 것과는 비례한다는 사실입니다.

경자년 새해와 함께 온 백성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게 밖으로 토해지고 있지만 진실로 지혜로운 백성이라면 이제 입을 닫고, 그 열기들을 삼키며 나 자신을 보아야 하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가슴에 품을 때 누가 십자가를 지는 자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을 살리는 것은 돈이나 조직이나 정보가 아니라 십자가가 유일한 것입니다. 새해 우리 모두가 그리고 이 나라가 진실로 십자가를 지는 일에 자신을 불태울 수 있어야 새해가 정말 새해가 되는 기쁨을 우리 모두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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