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기 다른 모습·표정과 인사로 등교해
다양한 빛깔 만나는 시간, 배움이자 기쁨

빛나는 아침 해를 맞이하듯 아이들을 맞이한다. 먼저, 학교에 오자마자 1층부터 4층까지 한 바퀴 돈다. 복도 창을 열어 밤새 갇혀 있던 공기를 내보내고, 층별로 화장실을 꼼꼼히 살핀다. 환풍기 스위치를 올리고, 휴지통은 비워졌나, 막힌 곳은 없나, 화장지는 안 떨어졌나 챙긴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 중 하나가 화장실이니까. "안녕?", "언제 왔어?" 교실을 둘러보며 일찍 온 아이들과 잠깐 인사를 나눈다.

중앙 현관 앞에서 '아침맞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아침 해와 함께 학교로 걸어온다. 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아이의 덩치가 가늠되다가, 가까워지면 자세와 걸음걸이가 감지된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이, 신나게 달려오는 아이, 현관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느려지는 아이, 잠이 덜 깬 듯 무거운 몸을 끌고 오는 아이, 다른 친구들 뒤에 가려진 아이, 자전거를 세우고 헬멧을 벗으며 숨을 몰아쉬는 아이, 이어서 우르르 몰려오는 아이들.

열 걸음 정도 앞에 이르면 표정까지 다 보인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 얼굴이 덜 펴지고 굳어 있는 아이, 만사 귀찮다고 써 놓은 아이, 내게 눈길을 가득 주는 아이, 잠시 반짝하고 눈빛이 마주치는 아이, 눈길을 피하는 아이,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가와 나도 모르게 살짝 눈길을 피하게 하는 아이. 아이들 앞에서 나는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하이파이브하려고 손을 높이 들었지만, 그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뜻대로 하시지요. 악수도 좋고 하이파이브도 좋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눈다. 차가운 기운에 깜짝 놀라 다시 보게 되는 아이, 따스한 손길을 간직한 아이. 살짝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 소리가 나게 부딪는 아이, 마주칠 듯하다가 손바닥을 내려 장난을 치는 아이, 귀찮은 듯 시늉만 하는 아이. 아이들마다 다른 인사, 같은 아이가 하나도 없다. 그새 아침 해는 한 뼘 이상 솟아올라, 현관은 더욱 밝아진다.

늘 나보다 일찍 학교에 오는 몇몇이 있다. 3학년 광표는 오자마자 자기 교실 문을 열고 복도 창을 열어 환기한다. 좀 있으면 교실의 분리수거 통을 들고 내려와 재활용품 수거장으로 간다. 아, 저렇듯 숨은 손길이 있어 교실이 깨끗해지고 맑은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늘 시작종이 울리고 나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1학년 아이는 "아직 종 안 쳤죠?" 하고 묻는다. 이미 종이 울리고 나서 왔으니 매번 종소리를 못 듣는 것이다.

형제가 함께 등교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둘이서만 재잘거리며 걸어오는 형제도 있고, 같은 시각에 들어서지만 형은 형 친구들과 동생은 동생 친구들과 어울려 등교하는 아이도 있다. 3학년 쌍둥이 형제가 같은 색깔의 외투를 걸치고 들어설 무렵이면 8시 25분쯤 되었다는 뜻이다.

손가락 보호대를 한 아이, 발목에 석고붕대를 한 아이. "주말에 놀다가 다쳤어요.", "얼마 동안 이러고 있어야 하노?", "4주요.", "고생하겠는데…." 그러다가 훌쩍 시간이 흐른다. "어, 붕대 풀었네!"

하루는 3학년 석원이가 악수를 청한 내 손에다 껌을 하나 쥐여 주었다. 또 한 번은 과자 카스타드를 손에 얹어 주었다. 참 이상했다.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 날 나는 답례로 초콜릿이 든 과자를 그의 손에 살짝 쥐여 주었다. 늘 지각하다 일찍 오는 아이를 만나면 기쁘다. 찡그린 얼굴이 조금이라도 펴진 아이를 마주하면 기쁘다.

이 다양한 빛깔의 아이들이 밝혀주는 아침이 기쁘다. 아침마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그 자체가 큰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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