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제·변화·의미 만족시키는 음악
250년 지나도 커져만 가는 감동의 근원

올해 세계 음악계의 가장 큰 이슈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매년 유명 작곡가의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지만, 올해의 잔칫상은 여느 해와 무게가 다르다. 주인공이 베토벤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알고 음악을 못 들어 본 작곡가가 많은데, 베토벤은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오늘도 어느 핸드폰 벨 소리는 '따다다 단~' 하며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소절을 들려준다. 청소차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울리며 후진하고 있다. 교향곡 9번의 합창 멜로디는 가사를 바꿔 기독교 성가집에 올라 있고, 피아노 소나타 멜로디는 각종 팝송에 샘플링되어 흘러나온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기발한 몇 개의 멜로디 때문이 아니다. 청각장애를 딛고 일어선 엄청난 투지 또한 충분한 이유가 되진 못한다.

내 생각에 베토벤의 위대함은 그가 음악으로 얘기하는 방식에 있는 것 같다. 멋진 이야기는 구조·주제·변화·의미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베토벤의 음악은 그 점에서 최고의 만족도를 선사한다. 그 비법이 무엇일까 들여다보자.

베토벤은 첫째로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의 구조를 잡는다. 음악에서는 '소나타 형식' 같은 이야기 형식이 있다. 이를 통해 전체 이야기의 논리적 틀을 잡는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악장을 나누어서 각각의 악장에 다른 움직임을 설정한다.

자, 이렇게 전체 그림을 잡은 다음엔 이야기의 주제를 던진다. 이 주제는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지만 세 가지를 넘기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주제를 반복하고 변화시킨다. 음악에선 악기의 조합이나 음의 크기와 빠르기를 바꾸어서 변화를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굴곡진 드라마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그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철학이나 시대 정신 같은 사상을 담아서 이야기를 하늘로 띄운다.

이런 방식이 모든 이야기꾼의 공통된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안 와닿는 때가 많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요?"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생긴다. 이야기를 잘하기는, 게다가 많은 사람이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는 정말 어렵다. 구조적 짜임새가 없으면 미덥지 못하고, 주제가 없으면 갈팡질팡하고, 변화가 없으면 지루해지고, 의미가 없으면 허전하다.

이 점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누구보다도 명료하고 흥미로우며 진지하다. 역설적이게도, 베토벤은 소리를 못 듣게 되면서 음악 이야기를 더욱 잘하게 되었다. 침묵의 세계를 통해 소리는 고도로 정제되고 증폭되어 듣는 이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과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16개의 현악사중주 등 모두 350개가 넘는 명곡을 남겨놓았다. 음악을 통해 그는 말하기와 듣기가 이어지고, 침묵과 소리가 합일하는 세상을 드러냈다.

무려 250년이 지났지만, 그의 영향력은 조금도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그래서 올해 차린 베토벤 음악 잔치에 많은 사람이 거들고 즐기기를 권한다.

베토벤은 여전히 최고의 이야기꾼이며 최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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