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약 230만 명
택배·대리 운전기사 등 노동 3권·4대보험 제외

#'노력이 돈이 됩니다. 택배 기사 모집'

택배사에서 택배기사를 희망하는 직원을 모집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면접 때는 화물차 '지원'이 아니라 '구매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능력제라는 말에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탁계약서'를 작성했고, 아주 잠깐 대형 유통회사의 파트너가 된 양 마음이 들떴습니다.

유통회사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고, 매일같이 회사 지침에 따라 물량을 분류하고 배송합니다. 반나절 동안 절반도 배달하지 못한 택배 물량을 보면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생각조차 못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배달을 합니다. 가족 모임이 있어도, 다쳐도 회사가 받은 물량을 소화하느라 마음대로 쉬지 못합니다.

문득 혼란이 옵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이 회사 소속으로 일하는데 노동자의 기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다니. 물론 연차 휴가·퇴직금은 보장받지 못하고 고용보험이나 4대 보험도 안됩니다.

저는 택배 기사입니다. 저는 노동자일까요, 사업자일까요?

#매일 취객을 상대하는 일을 합니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9시간가량 대기하며 대리 운전을 합니다. 대리 운전 건당 25~33% 수수료를 콜센터에 주고도 보험료, 관리비, 출근비(순환 차량비) 명목으로 이것저것 내야 할 건 많습니다. 콜센터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콜이 차단되기 때문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회사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지요.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동료의 불행한 사고·죽음 소식을 종종 접합니다. 만취한 고객이 동료를 내리게 하고서 차로 치어 숨지게 한 뒤 달아난 사건이 있었고, 새벽 귀갓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참변을 당한 동료도 있습니다.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어서 산재 적용을 받기 어렵습니다.

저는 대리 운전기사입니다. 저는 노동자일까요, 사업자일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크게 임시직·계약직·간접 고용·특수고용노동자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지시·감독을 받고 여느 노동자와 똑같은 처지에 있지만, 근로 계약이 '특수' 형태라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정식 법률 명칭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며 약 2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택배기사 △대리운전 기사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퀵서비스 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학습지 교사 등이 해당한다.

이들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업무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그렇기에 노동자이지만 사업자의 경계에 서 있다.

회사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이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악용한다. 특수고용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상당수가 최저임금제, 실업보험, 산재보험과 같은 사회적 보호에서 제외돼 있다.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근로기준법 등 임금 노동자에게 당연하게 적용되는 법적 권리에서도 배제돼 노동시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 택배 물품이 물류센터에 가득히 쌓여 있다. 그 속에 사람이 있다. /연합뉴스
▲ 택배 물품이 물류센터에 가득히 쌓여 있다. 그 속에 사람이 있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특수고용 형태 노동시장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디지털 경제 확산으로 대리운전, 퀵서비스, 음식배달, 택시운전 등 플랫폼 노동자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경제 종사자는 47만~54만 명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구한 일거리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소득을 버는 새로운 고용형태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사업자와 노동자의 전통적인 노동 계약 관계를 허물면서 노동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전통 과업이 플랫폼 노동화되면서 발생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음식배달원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음식업주가 직접 고용한 배달노동자가 음식을 배달했지만 음식주문 앱 사용이 확대되면서 음식 배달은 주문형 앱 노동으로 대체됐다. 이 과정에서 음식배달원의 고용 계약 형태는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보수는 임금에서 수행한 배달 건당 수수료의 합으로 변경됐다. 사용자로부터 각종 업무지시와 관리를 받는 것은 같지만 노동법과 사회보험이란 보호막이 사라진 셈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 3권이 보장되지 않아 대체로 조직화돼 있지 않다.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대변할 방법이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거나 노동자성 인정을 두고 회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도 당연히 노동자라는 사회적 인식은 확산하고 있으며 지난해 택배 노동자와 대리운전 기사는 연대를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겨우 어렵게 뗀 한 걸음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두 걸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부닥쳐 있다.

택배 노동자를 분류 노동자와 배송 노동자로 구분해 '공짜 분류 노동'을 차단할 수 있는 이른바 택배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지난해 8월 발의됐지만, 국토교통위원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1월 경남도에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한 대리운전 기사들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자영업자로 분류되던 대리운전 기사를 노동자로 본 첫 판결이 나와 이후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민사1부는 대리운전업체 2곳이 부산 대리운전산업노조 소속 조합원 3명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하며 "대리운전 기사들도 노동 3권 행사가 가능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이장규 노동사회교육원 이사는 포괄적으로 '일하는 사람 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는 "비정규직 논의는 특수고용노동자 등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모든 노동자는 법적으로도 노동자로 인정돼야 함은 물론, 불가피한 상황에서 개인사업자 지위를 선택한다 할지라도 법과 사회시스템은 일하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