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뜻과 다른데도 습관적으로 쓰는 말들
'앵무새의 사람 흉내'라는 지적 기우이길

경남 남해는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조선 시대 때 유배지로 많이 쓰였다. 유배지에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했던 문인, 선비들이 많았으니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송강 정철 등이 대표적인데 남해로 쫓겨왔던 서포 김만중도 그중 한 사람이다.

공조판서와 대제학을 거쳤던 그는 숙종 때 세자책봉 문제로 1689년에 남해로 유배와 10년 후 남해군 이동면 노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글 소설 <구운몽>과 시화 평론집인 <서포만필> 등을 남겼는데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이 크다.

그를 비롯하여 남해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문인들을 소개하는 유배문학관이 남해읍에 있다. 수년 전 그곳을 방문했을 때 접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파격이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서포만필의 한 구절은 이렇다.

"다른 나라 말과 글의 얼개를 가지고, 설령 우리 말과 아주 비슷하게 표현하였다 할지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30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지금도 이 땅에는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대표 사례 중 하나가 새해면 늘 반복, 확산하는 간지(干支)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7일 발표한 대통령의 신년사 첫 문장이다. 과연 경자년 새해는 밝았는가? 2020년 1월 1일은 경자년 첫날이 아니라 기해년 섣달 이렛날이며 기해년 정월 초하루는 2020년 1월 25일이고 그날이 설날이다. 25일의 시차가 있다.

태양력인 서기와 태음력인 간지는 태생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왜 해마다 이런 이종교배 기형아를 만들어 즐겨 쓰고 있을까?

비슷한 사례들도 많고 어처구니없는 오류도 한둘이 아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 될 일을 굳이 '오찬'이나 '만찬'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고 하면 될 것을 사전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금도(襟度: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라는 단어를 끌어들여 스스로 산통을 깨는 경우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또 남의 장인이나 장모를 뜻하는 '빙부(聘父)'나 '빙모(聘母)'를 사위가 보내는 부고나 문상 답례 문구에 구사해 본인과 배우자, 고인과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경우까지.

이런 현상에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라 했던 서포의 표현을 빌려오면 지나친가?

충북 괴산군 화양동에는 조선 중후기 사회상을 극명하게 담고 있는 사당이 하나 있다. 만동묘! 임진왜란 때 명(明)이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명나라가 망하고도 60년이 지난 1704년에 지은 사당으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일제 총독부에 의해 철거될 때까지 200년 이상 명맥을 유지했으니 그 명(命)이 참 질기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이런 걸 의리라 해야 할지, 사대라 해야 할지 아니면 집착이라 해야 할지 난감하다. 말이라 다르고 건물이라 다르며 제사라는 행동이라서 다를까?

특별한 의도 없이 습관적으로 구사한 간지 세 글자를 두고 앵무새나 만동묘를 떠올리는 것이 부디 나만의 노파심이기를 간절히 기원하지만, 양손에 나란히 들린 태극기와 성조기를 떠올리면 이 걱정이 단순한 노파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또 다른 노파심은 감추기 어렵다.

판단하지 않은 행동인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것처럼 그 이면에 숨은 굳은 인식은 아주 깊이 숨어 번식하다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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