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된장 사 먹는 흐름 포착
인쇄업서 1997년 장류사업 전환
낱알로 띄우는 '알콩메주' 주력
"고유의 맛·방식 사라지지 않게"

뒤로는 진달래 가득한 종남산, 앞으로는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이 있는 밀양시 초동면. 공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전통장류를 만들어온 업체가 있다. '장마을'은 '맛있게, 정결하게, 정직하게'라는 사훈을 내걸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장 담그기 좋은 정월(正月)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장마을 박규민(60) 대표와 장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장마을' 박규민 대표가 삶은 콩을 보여주고 있다.
▲ '장마을' 박규민 대표가 삶은 콩을 보여주고 있다. /류민기 기자

-어머니 손맛과 정성이 담긴 제품을 만드신다고요. 박 대표님이 기억하는 어머니 손맛이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모님이 된장을 맛있게 잘 담그셨어요. 어머니가 담그는 된장보다 더 맛있었죠.(웃음) 표현하기가 힘든데 된장 향이라는 게 있습니다. 장독을 열면 암모니아 가스가 올라오는데요. 그 냄새 속에서 단내도 나고, 아미노산이 생성되면서 나는 냄새 같은 것도 있어요. 이모님은 이들 향이 나는 된장으로 음식을 만드셨어요. 공장에서 만드는 단맛만 나는 된장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박 대표가 '이모님 손맛'을 시중에서 맛본 건 1990년대 중반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인쇄업에 종사해왔던 그는 1995년께 소규모로 전통장류를 판매하는 지인을 두세 번 도왔는데, 이곳에서 만든 된장 맛이 어렸을 적 먹었던 그 맛과 같았다. 박 대표는 "인쇄업에 염증을 느끼던 중에 맛있는 된장을 만들어 장사를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쇄업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장류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하셨네요.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1997년 장류업계에 진출했는데요. 앞서 2∼3년간 물건을 떼 판매했습니다. 유통부터 배우려 한 거죠.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젊은층은 점점 된장을 안 담그는 거예요. 본가에서 가져다 먹든지 하는데 '이거다' 확신이 들었습니다."

조선식품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한 박 대표는 2001년 현재 자리로 본사를 옮겼다. 상호도 '장마을'로 변경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우리 콩으로 만드는 전통장류. 장마을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된장·간장·청국장·고추장·막장·쌈장에 알메주·장소금·고추장 재료 등에 이른다.

▲ 장마을에서 생산하는 제품. 장마을알콩메주와 조선장소금만 있으면 전통 된장을 담글 수 있다.
▲ 장마을에서 생산하는 제품. 장마을알콩메주와 조선장소금만 있으면 전통 된장을 담글 수 있다. /류민기 기자

-전통장류 제조를 고집해오셨어요.

"젊은 사람들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들이 전통 장맛을 좋아합니다.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이 맛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잖아요. 어릴 때 먹어본 그 맛, 엄마가 해준 그 맛이 기억에 남아 있는 거 같아요. 시중에서 생산되는 된장은 단맛만 납니다. 소맥분을 넣어 바로 숙성되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암모니아 냄새도 없고, 아미노산 맛도 없습니다. 그래서 MSG인 글루타민산나트륨를 넣어 인위적으로 만들지요."

과거 정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장을 담갔다. 장 담그기가 집안 행사 중 하나였다. 정월, 그중에서도 말날(음력 4, 9, 21일)과 손 없는 날(신이 없는 날. 음력으로 끝수가 9와 0인 날)이 으뜸인 날이었다. 장을 망치면 그해 그 집 음식까지 망칠 수 있고, 장 담그기에 성공하면 그 집안 한 해 음식은 성공한 셈이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가을부터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초동면 인근에서 나온 콩을 포함해 진주, 경북 영천, 안동, 의성 등지에서 수확한 콩을 사들인 후 삶아낸 데 이어 자동 온도·습도조절장치를 갖춘 배양실에서 띄웠다. 정월이 다가온 가운데 메주 제품을 생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는데, 눈에 띄는 점은 장마을 메주는 전통 메주가 주가 아닌 개량 메주, 즉 알콩메주가 주 생산품이라는 것이었다.

-장마을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메줏덩어리는 곰팡이가 속속들이 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희는 덩어리가 아닌 알로 띄우는데요. 콩 단백질의 바실러스균에 의해 골고루 막을 입힌 듯 발효되면서 천연조미료인 아미노산이 만들어집니다. 일반 된장보다 아미노산이 10배 이상 많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이 아미노산이 독특한 향과 감칠맛을 냅니다."

박 대표는 메줏덩어리의 경우 속속들이 건조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습기에 의해 부패할 확률이 있다는 이야기다.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냄새가 된장을 담근 이후에도 날 수 있지만 알로 띄우면 습기에 의해 부패할 일이 없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 박규민 대표가 생산라인을 설명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 박규민 대표가 생산라인을 설명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공장식 된장'을 사 먹는 데 익숙해져버린 소비자들이 전통 된장을 담그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박 대표는 장마을 제품으로 설명했다) "전통 된장 담그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항아리에 생수 5되 5홉(9.9리터)과 소금 1포를 붓고 녹인 후 알메주를 넣어 60일간 발효하면 됩니다. 간장은 생수 11되(19.8리터)와 소금 2포를 붓고 녹인 후 망사에 담은 알콩메주를 넣어 60일간 두면 되고요. 일반 가정에서 젊은 사람들도 충분히 담글 수 있어요."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는 장류(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 제조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2018년 기준 대기업이 장류 소매시장을 80%나 점유한 상황에서 나온 대책이었다. 중기부 대책은 소상공인이 주로 생산·판매하는 대형제품 시장(B2B)에 적용됐는데, 정부는 소형제품 시장(B2C)을 대부분 잠식한 대기업이 소상공인이 영위하는 대형제품 시장까지 진출하려는 것을 막고 사업 영역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소상공인을 보호하려면 조달청 등 입찰 과정에서 소상공인을 위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설이 잘 돼 있어야 하는 것처럼 대기업에 유리하도록 제한을 두다 보니 수작업하는 곳은 시설이 없어 점수를 받을 수가 없다"며 "해썹(HACCP) 인증을 받도록 요구하지만 전통 된장은 바깥에서 자연 숙성시키는 방식인데 해썹 기준에 맞을 수가 없다. 전통장류 제조업체 특성을 고려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전통장류를 많이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해먹는 게 최고 아닙니까. 사 먹는 것도 좋지만 직접 담가 먹어야 전통장류 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사 먹기만 하면 언젠가는 (전통장류가) 사라져버리거든요. 어릴 때 먹어본 그 맛, 엄마가 해준 맛이 나는 된장 만드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일반 가정에서 젊은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