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
독립적 옴부즈만 반드시 도입해야

 

상자 속 사과가 썩는 이유는 썩은 사과 한 알 때문일까, 아니면 썩은 상자 때문일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1971년 미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된 이른바 '감옥 실험'은 지금에 와서도 충격적인 울림이 있다. 실험을 기획한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그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에서 '썩은 상자는 상자 속 사과를 썩게 한다'고 증언한다. 어딜 가나 나쁜 사람들은 있지만, 정작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악인이 아니라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이란 것도 특출한 것이 아니라 2명 이상만 모이면 생기는 상하관계, 명령과 복종으로 이뤄진 권위의 시스템이다. 1980년대 광주,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학대, 역사 속 각종 홀로코스트는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는 저항하지 않는다는, 시스템적인 악의 생성 원인을 보여준다.

사과 상자를 행정기관이라고 비유해보자. 사실 근래의 행정은 우리 일상에 속속들이 손길 안 닿는 곳이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행정기관=사회'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상자가 썩지 않도록 전통적인 감시·견제 제도가 있지만 행정의 오·남용이나 부당·소극 행정은 다른 방법, 다른 차원으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듯 전통적인 기제들에 구멍이 많다면, 그 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주목받은 것이 '옴부즈만'이다. 옴부즈만은 스웨덴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는데 '의회의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연원에 충실하지만 집행부에 독립된 의회의 '늘어난 팔'로 비대해진 행정의 오·남용을 잡아내는 데 이바지한다. 특히, 옴부즈만은 행정심판·행정소송과 달리 제도 개선을 요구할 권한이 주어지므로, 말하자면 '사과 상자'의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있는 제도로 주목받고 있다.

경남도의회가 의정활동을 돕고자 펴내는 <정책프리즘> 최근호에 따르면 2018년 고충 민원 신청 건수의 증가세(39%)보다 담당 인력은 늘지 않고, 이 때문인지 같은 해 정부 부처 합동 민원서비스 평가에서 경남도는 최하위인 '매우 미흡'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두 차례 경남도를 방문해 옴부즈만 설치를 권고했다고 한다.

경남도가 옴부즈만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진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점은 매우 반갑다. 다만, 옴부즈만을 집행부에 소속시키는 집행부형 옴부즈만 형태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옴부즈만 연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옴부즈만의 성공 원칙인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옴부즈만 소속을 의회로 두는 '의회형 옴부즈만'이 적합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학계는 물론,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방 옴부즈만 가이드라인에서 집행부형뿐만 아니라 의회형 옴부즈만 도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례로 가능성을 열어둘 것을 표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의회형 옴부즈만에 부정적인 학자들도 지방자치법 개정이 선결된다면 더욱 이상적인 형태의 지방 옴부즈만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남도가 2021년 출범을 목표로 '경남형 옴부즈만'을 준비 중이니만큼 연구 수행 시 어느 때보다 무르익은 지방자치법 개정 논의와 연계한 과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복을 자처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대다수 선량한 공무원을 소극·부당행정으로 이끄는 썩은 사과 상자를 하나씩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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