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과 부산 구분짓는 망산도 허황옥 배가 가라앉은 유주암
낯선 만남, 새로운 생각 일으켜
낮은 돌담 살아있는 안골마을 새로움과 낡음 한데 어우러져
골목 거니는 즐거움 느끼게 해

부산 강서구 송정동 망산도(望山島)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해안으로 바짝 다가붙은 조그만 바위섬입니다. 조그맣지만 그래도 나무가 제법 자라고 있네요. 이 섬은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한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와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요즘에는 망산도가 이곳이 아니라 김해 태정마을이나 칠산마을, 전산마을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역사보다는 위치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묘한 경계 = 지금 망산도는 부산 강서구와 창원 진해구의 딱 경계에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망산도 앞 바닷가로 난 인도까지가 부산입니다. 그렇더라도 부산에서 망산도에 가려면 창원 진해구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행정구역이 이렇게 나뉜 건 2006년 헌법재판소 결정 때문인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녹산국가산업단지, 부산 신항 조성과 관련한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아무튼, 진해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부산 섬이라니 좀 이상한 기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묘한 경계는 가락국과 인도 아유타국의 만남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경계란 서로 다른 것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 만남이 낯설면 낯설수록 경계가 주는 의미가 크겠지요. 하여 결국 경계란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망산도를 바라보는 바닷가에 유주정이란 누각이 있습니다. 망산도에서 녹산국가산업단지 쪽으로 조금 떨어진 바다에 유주암이라는 아주 조그만 바위섬이 있습니다. 허황옥이 타고 온 돌배가 가라앉아서 생겼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유주정이란 이름은 이 유주암에서 따온 거지요. 나이 든 사내 하나가 정자에 앉아 멀끔히 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뭐라도 물어볼까 싶어 말을 거는데, 자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베트남'이라고 하네요. 베트남 이주노동자인 듯합니다. 진해와 부산, 가락국과 아유타국이 만난 풍경을 보는 눈빛이 왠지 쓸쓸합니다. 지금 그의 경계에서는 무슨 생각이 일어나는 걸까요.

▲ 창원 진해구와 부산 강서구 경계에 있는 망산도. 왼쪽 도심은 진해, 오른쪽 섬은 부산이다. /이서후 기자
▲ 창원 진해구와 부산 강서구 경계에 있는 망산도. 왼쪽 도심은 진해, 오른쪽 섬은 부산이다. /이서후 기자

◇확장 중인 신도시 용원 = 망산도에서 뒤를 돌면 진해구 웅동2동입니다. 보통 이 근처를 '진해 용원'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용원은 법정동 이름입니다. 행정동으로 웅동1, 2동이 이 용원동에 포함됩니다. 법정동은 보통 일제강점기에 정해진 게 많습니다. 용원은 옛날 행정구역 용재리(龍在里)와 원리(院里)의 첫 글자를 합해 용원리(龍院里)가 되면서 시작된 명칭이네요. 웅동은 진해의 옛 이름 웅천현의 동쪽이란 뜻입니다.

진해 용원 지역은 사실 부산 생활권입니다. 부산항 신항,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녹산국가산업단지 배후 주거지입니다. 직장은 부산에 다니고 살기는 진해에 사는 거죠. 옛날에는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는 시골이었겠지만, 지금은 전형적인 신도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용원 수산시장 주변에 시골 소읍 같은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산시장 너머로 신축 초고층 아파트들이 '이제 내가 이곳의 주인공'이란 느낌으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도로 위를 가로지른 '2020년 어촌뉴딜 300사업' 선정 축하 펼침막만이 이곳이 여전히 어촌마을임을 증명합니다.

수산시장에서 도심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동네 대부분이 원룸이나 빌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굳이 상가, 모텔이 늘어선 번화가가 아니라도 편의점이나 식당, 고깃집들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습니다. 도로변 가로수마다 신경질적으로 붙어 있는 무단투기금지 경고판이나 최근에 지은 웅장한 용원동 공영주차빌딩 같은 것들이 이 동네가 지금도 한창 확장하고 있는 곳이란 걸 보여줍니다. 용원은 이제 전형적인 도심 번화가 풍경이라 거닐어 볼 만한 곳이 없네요. 그래서 근처 안골로 향했습니다.

▲ 돌담이 살아 있는 창원 진해구 안골마을. /이서후 기자
▲ 돌담이 살아 있는 창원 진해구 안골마을. /이서후 기자

◇안골을 거니는 즐거움 = 아, 지금 굴이 한창 제철이네요. 안골 입구에 길게 늘어선 굴막촌에 나름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안골 굴막촌에 사람들이 많이 찾죠. 몇 번 가게, 하고 번호로 불리는 비닐하우스 건물이 도로를 주변으로 꽤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번호가 달렸다는 건 이들이 도매업자라는 뜻이겠습니다. 그래서 다들 생굴·석화 도소매, 전국 택배라는 간판을 단 거겠지요.

안골 토박이 어르신들 말로는 3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직접 굴 양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굴이 아주 맛있었다네요. 특히 부산항 신항이 있던 자리에 양식장이 많았다네요. 신항이 들어오면서 양식장을 다 접어야 했답니다.

지금은 거제나 통영 쪽에서 굴을 가져온다고 하네요.

"그때는 바다 좋았지. 말도 못했지. 굴 말고도 없는 게 없었어."

그 좋았던 바다를 이야기하던 어르신의 표정이 잠시 젊은이처럼 빛납니다. 안골 마을 정자나무 앞에서 만난 어르신입니다. 수령이 150년 정도 된다는 이 나무는 아직도 조금씩 새 가지를 뻗어내고 있습니다.

안골 마을은 골목이 지난 모습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돌담이 남아 있는 곳도 몇 군데 있습니다. 빈집도 꽤 보이고요, 말끔하게 페인트칠을 하거나 새로 지은 집도 보입니다. 낡은 처마 밑으로 메주가 달린 집이 있고, 멋진 조각으로 현관을 장식한 집도 있습니다. 낡은 곳은 부드럽게, 새것은 선명하게 나름 어우러져 거니는 즐거움이 있네요. 담장 높이가 적당해서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집안 구경도 할 수 있습니다.

안골 마을 뒷산에는 안골왜성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일본식 성곽입니다. 남해안 해안가로 이런 왜성이 제법 많지요. 안골왜성은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란 장수가 쌓았습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좀 전 어르신 말로는 이 장군들의 후손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고 합니다.

안골 마을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로 나갑니다. 안골 해안은 항아리 모양입니다. 바다 너머 용원 지역 아파트촌이 보입니다. 아파트촌이 꼭 성벽처럼 보입니다. 이 성벽은 마치 현대인이 만든 또 다른 경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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