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그 말
만물의 근원은 하나이니 사랑·자비를

부산 광안대교를 가로질러 쭉 달리면 부산문화회관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용당동이 나온다. 용당동 상가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부산의 원로 화가 영설 서상환 화백의 화실에 들어서면 중앙벽면에 '일미우주'라고 쓴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는 글이다. 틈이 나면 화실에 들러 손수 따라주시는 따끈한 보이차 한 잔에 그림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논하며 생사의 근원을 이야기하는 만남이 행복일 때가 있다.

고향인 김해중학교 재학 시절 서상환 화백님은 당시 미술 교사로 잠깐 근무하셨는데, 특활시간에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사제 간으로 만났다.

서상환 화백님은 '신과 예술과 나'라는 좌우명을 두고 있다. 전업 작가로 기독교 성상화 작업에 일생을 바친 신념의 예술가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제자는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가 되었고, 서 화백님은 60년 변함없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오전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 예배를 올리며 일과를 시작하는 신학 박사이기도 하다. '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일미우주' 글을 보고 알고 있는 이야기 한 편을 들려 드렸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안이정이라는 존함을 가지신 원불교 교무님이 계셨다. 부산을 방문했다가 교도님들과 함께 양산 통도사를 가게 되었다. 검정 양복에 검정 구두를 잘 차려입은 안이정 교무님을 보고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선문답의 법방망이를 하나 보내왔다. "원불교에서 오셨는데 부처님의 자비를 공부하시는 선생님께서 어찌하여 소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동행한 교도들도 뜻밖의 질문에 당황스러워 안이정 교무님 얼굴만 쳐다보았다. 교무님은 딱 한 말씀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그 한 말씀에 합장 인사하고 물러갔다. 그 한 말씀은 단순 명쾌하였다. "내 가죽 내가 신는데 웬 말씀이 그리 많으시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서상환 화백님은 박장대소하며 정말 오늘 통쾌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고 좋아하셨다. 스님은 소와 내가 분리된 자리에서 질문했는데 안이정 교무님은 소와 내가 둘이 아닌 본체 자리에서 답변했다 하겠다.

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 있음은 곧 우주 만물이 둘 아닌 본체 자리에서 가능한 글이라고 하겠다. 모든 우주 만물은 성·주·괴·공의 이치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지푸라기 하나라도 변화할 뿐이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없다. 둘 아닌 이 본체 자리를 안다면 일체생령이 모두 한 몸에 근원함을 알고, 나와 둘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자비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다.

경자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모두가 한 뿌리에 근원한 둘 아닌 원리를 안다면 좀 더 따뜻한 눈길로 이웃을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는가. 종교적 믿음이 달라서 나누어지고, 지역감정으로 나누어지고, 정치적 생각이 달라서 갈라지고 편 나누어지는 오늘의 사회 현상에 '일미우주'의 화두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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