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미국 충돌 위기 보며 떠오른 그림
전쟁 광기·절망 담은 무채색 작품 섬뜩

'눈에는 눈', '힘에는 힘' 양상으로 험한 말들을 쏟아내며 마치 전쟁을 예고한 이란과 미국이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 앞에서 일단 멈추었다고 한다.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미국이 잔인하게 제거한 후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이란이 공격한 데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다행히 전쟁을 선언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리 정해진 시간을 지나서 마치 영화 속 영웅의 등장처럼 천천히 들어와 완급을 조절했다.

전쟁의 불안함이 우리나라에 드리운 긴 그림자이기도 해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 전쟁의 그림들을 살핀 적이 있었다.

부러진 칼을 들고 쓰러진 전사, 그 위에서 울부짖는 말의 머리, 자식을 잃고 두 팔을 들어 올리고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있는 어머니! 흑색·흰색·회색·갈색으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벽. 회색과 갈색으로 강하게 부각되었던 흑백의 대비! 날카로운 불안감과 이질감을 주는 삼각형 구도는 암울함을 더했다.

입체주의의 면 분할 기법으로 극적인 대조를 표현한 '게르니카'를 보면서 이 무채색의 그림이 주는 섬뜩한 느낌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비극성과 함께 광기·절망·좌절의 절규를 느꼈다.

그리고 학살에 대한 고발 그림으로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군이 저항하는 이곳 스페인 국민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학살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린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프란시스코 호세 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 있다.

이 그림은 전쟁의 희생자를 전면에 세운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전쟁화의 관습적인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이 작품은 왕이나 군대의 영광을 재현하고 기념하는 대신, 총살 부대의 총구를 직면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1824년에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도 약탈과 방화·진압, 그리고 처형 장면이 이어진다. 앞에는 포로로 잡혀서 처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다.

당시 이 참혹한 그림에는 "키오스 섬의 학살이 아니라 회화의 학살이다"라는 세간의 평이 따라붙기도 했다.

하지만 격동의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뜨거운 마음으로 고발한 이 그림은 이후 회화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제2차 대전, 1950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20세기의 전쟁, 나아가 21세기 들어서서 전쟁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피카소는 1951년 "게르니카는 모든 폭격 당한 도시의 그림"이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패러디하여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중세풍의 갑옷을 입은 여러 군인이 여자와 어린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이 그림은 한국전쟁 중의 신천대학살을 모티브로 그려진 작품이다.

1967년 400명의 예술가가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비난하며 '게르니카'를 미국에서 철수시키라고 피카소에게 청원했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뉴욕 한가운데에서 매일 정치적 발언을 하는 기쁨을 즐기고 있다고 하면서 "게르니카가 미국에 있는 것이 제일 낫다"고 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으로부터 지금도 분리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 바스크 지역이다. 그러니까 '게르니카'는 지금도 진행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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