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향응 수수 의혹에
총 19일간 자백만 강요
법원 위자료 지급 판결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삼성중공업의 고문에 가까운 감사 방식이 드러났다. 금품·향응 수수 의혹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하루 8시간씩 14일 동안을 비롯해 모두 19일간 노동자에게 자백만을 강요했다.

법원은 이를 '부당한 감사'라고 판결했다. 삼성중공업이 객관적 조사를 통해 정당한 징계만 하면 되는데도 감사를 통해 지나치게 압박했다는 것이다.

◇지나친 감사 = ㄱ(57) 씨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물류 관련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삼성중공업은 ㄱ 씨가 업무 관련 업체로부터 금품·향응을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ㄱ 씨를 포함해 직원 4명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8개월에 걸쳐 감사를 진행했다. ㄱ 씨에 대한 실제 감사 일수는 19일 정도다. ㄱ 씨는 대기발령(인사)도 받지 않은 채 감사만 받았다. 업무에서 배제된 ㄱ 씨는 하루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모두 14일 동안 하루 종일 감사를 받아야 했다. 또 이틀은 반나절씩, 사흘은 하루 1~2시간 등 모두 19일 동안 감사를 받았다. 하루 1시간에 못 미쳐 감사 일수에 포함하지 않은 것만 해도 2일이 더 있었다.

이 과정에서 ㄱ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 5개월 입원·통원 치료를 했다. ㄱ 씨는 감사 초기부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사내 심리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았다. 감사 도중에도 계속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삼성중공업은 ㄱ 씨가 장기간 병가를 냈다가 복직하자 곧바로 감사에 출석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감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ㄱ 씨가 중국에 출장을 갔다가 2차례 유흥업소에 갔다는 것. ㄱ 씨는 이에 대해 "비용을 낸 기억은 없다"고 했다. 향응을 받았다는 결론이 났다해도 그게 전부다.

ㄱ 씨는 2016년 7월 퇴직하며 퇴직위로금 6900만 원을 받았다. 함께 감사를 받은 다른 직원 3명도 회사를 그만뒀다. ㄱ 씨는 퇴직하고 나서 약 8개월 후 삼성중공업의 부당한 감사로 '중등도 우울에피소드' 산업재해를 입었다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았다.

◇감사권 남용 = ㄱ 씨는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등 2억 원을 달라며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ㄱ 씨가 부당한 감사를 받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창원지방법원 민사2부(이봉수 부장판사)는 9일 ㄱ 씨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삼성중공업이 ㄱ 씨에게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2심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이 사전에 객관적 조사도 없이 제보만으로 노동자에게 자백을 요구한 감사는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감사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또 감사에 대해 정당한 목적이 아닌 자발적 사직을 유도한 정황이 엿보인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이 ㄱ 씨에게 장기간 감사만 받도록 한 것을 정신적 고통을 가하려는 것으로 봤다. 인사팀 직원이 ㄱ 씨에게 "지금 얼마를 더 받으시려고요?"라고 한 말 등을 사직하라고 압박하려 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이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징계권을 행사했다면 충분했을 것"이라며 "수사기관도 피의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지 않는데, 계약관계에 있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삼성중공업의 감사 방식은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감사 당시 삼성중공업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할 때였고, ㄱ 씨는 걱정과 불안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것"이라며 "삼성중공업은 노동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보호·배려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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