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대의존 넘어서고자 조선만의 절기 찾아내려는 세종과 장영실 이야기
22년 만에 한 작품서 만난 한석규-최민식 연기 매력

세종: 소원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말해보거라.

영실: 제 소원은 항상 전하 곁에 있는 것이옵니다.

세종: 그것은 네가 내게 주는 상 같구나.

조선에 맞는 절기를 찾고자 했던 세종(한석규 분) 요청으로 장영실(최민식 분)이 간의대(천체 관측을 수행하는 간의를 설치한 천문대)를 만든다. 여러 대신 앞에서 절기 관측에 성공한 직후 세종과 장영실이 나눈 대화다. 왕과 신하의 대화 내용치고는 '소 스위트(so sweet)'하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주인공은 15세기 조선 최고 과학자 장영실과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이다. 두 사람이 이룬 업적을 그린 담백한 사극영화를 생각한다면 당황할 수 있다. 영화는 그보다 군주와 신하 간 진한 우정 '브로맨스'에 집중했다.

천민 출신 관노였던 장영실은 세종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면천되고 관직에까지 오른다. 이후 장영실은 물시계 '자격루'와 간의대, 측우기 등을 만들며 세종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세종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대신들에게 지친 마음을 장영실과 관계에서 위로받는다. 장영실 또한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자신을 알아봐 주고 꿈을 심어준 주군에게 충성을 다한다.

다만 북극성(세종) 한 별만 바라보는 장영실과 장영실 외에도 수많은 별을 돌봐야 하는 세종 간 미묘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전까지 두 사람이 너무 다정다감했던 까닭인지 연인 사이 질투처럼 보이기도 하다.

자주 국가를 이루려는 세종의 뜻은 명나라 눈치를 보는 원로들과 권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사대부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힌다.

급기야 명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대로한 명에 의해 장영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왕이 묘안을 내 장영실을 구하지만 왕이 자신 때문에 더 큰 뜻을 접어야 하게 됐음을 짐작한 장영실이 거짓을 고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위하는 마음. 과연 브로맨스의 끝판왕이다.

무려 132분 동안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배우들 연기 덕분이다. 영화 내용은 브로맨스지만 <쉬리>(1998) 이후 약 22년 만에 만난 두 주인공의 연기 대결도 볼만하다. 눈꺼풀로도 연기하는 한석규와 믿고 보는 배우 최민식의 투 숏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연기력이야 두 사람 모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세종의 깊은 고뇌와 백성을 아끼는 진정성, 그 속에 감춘 천진함 등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한석규와 달리 최민식은 몇몇 장면에서 어색함이 묻어난다. 아무래도 전작 영향일 테다. 바다를 호령하며 왜구를 물리친 <명량> 이순신이 왕 앞에서 수줍은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조연 배우도 주연 배우들 못지않다. 예능 이미지와 전혀 다른 근엄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준 영의정 역 신구와 극 중반 이후에 나와 '미친 존재감'을 뽐낸 조말생 역 허준호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특히 웃음 담당 3인방 김원해(조순생 역), 임원희(임효돈 역), 윤제문(최효남 역)의 극 중 배역은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두 인물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바람에 당시 복잡했던 정치 상황을 깊이 다루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서 더욱 드라마틱할 수 있었겠다. 역사적 기록의 빈틈에 감독 상상력을 더해 한 편의 웰메이드 사극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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