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도로공사·공공부문 등 비용 줄이려 '꼼수 회피'
정부 비정규직 제로 약속했지만 지침 모호해 헛구호 그쳐

"저는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안전과 생명 관련 업무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겠습니다.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 앞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비정규직은 취임 이후에도 증가세다. 2017년 657만 8000명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 748만 1000명까지 치솟았다. 재계를 비롯한 일부에서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는 사이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사업장은 해마다 증가했다. 경남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지엠과 한국도로공사는 경남지역 대표적 비정규직 해고 사업장이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지난 1일을 기점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585명을 해고했다. 지난해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한국도로공사 해고 노동자는 경남지역만 26명이다.

◇불법파견과 자회사

한국지엠과 한국도로공사는 모두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업장이다. 두 사업장 모두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소극적인 대처나 해고 등으로 노사 갈등만 커지고 있다.

한국지엠은 인천·창원지법뿐 아니라 대법원에서도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 노동부가 직접고용을 명령하고, 불법파견업체는 폐업조치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명령만 해놓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창원공장은 지난 2013년과 2016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커녕 해고로 일관해왔다.

한국도로공사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8월 요금수납원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는 6년 만에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이어 12월에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민사1부(재판장 박치봉)가 요금 수납 노동자 4116명(해고자, 자회사 이적자 등 포함)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정년이 지난 247명을 제외한 3869명에 대해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을 완료하고 일부 승소한 노동자들만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자회사 전환은 정규직 전환 갈등의 불씨가 됐다. 정부가 발표한 지침이 애매한 탓이다. 2017년 7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면 정규직 전환 방식은 세 가지다.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 △자회사 설립 후 정규직 채용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제3 섹터로 흡수하는 방법 등이다.

어떤 조건과 환경일 때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 직접고용만 허용되는 생명·안전 업무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등 쟁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2019년 12월 30일에는 원청의 간접지시도 불법파견이라는 노동부 지침이 발표됐다. 원청회사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단순한 지시만 전달해도 불법파견으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추석이던 지난해 9월 13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톨게이트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용순옥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본부장과 통화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추석이던 지난해 9월 13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톨게이트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용순옥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본부장과 통화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위탁 사업장

민간위탁 사업장 소속 노동자도 굳어진 비정규직이다. 민간위탁은 공공기관의 서비스업무를 개인이나 법인, 단체 등에 맡기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사회복지관, 치매안심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성폭력상담소, 아이돌봄(보조) 서비스, 장애인복지관, 유기동물보호, 견인보관소, 평생교육 아카데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뤄진다. 민간위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경남도가 생활임금 1만 원 시대를 열었지만 출자·출연기관만 해당함에 따라 민간위탁 사업장은 배제됐다. 시·도·교육청 소속 민간위탁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해 민간위탁 소속 노동자들은 사실상 중간착취를 당하고 있다. 자연스레 고용의 질과 의욕·보람은 떨어지고 산업재해 발생률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창원시 소속 청소노동자 사망사고도 민간위탁 때문에 발생했다는 노동계 지적이 빗발쳤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공공기관이 민간에 위탁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보호 근로조건을 지침으로 내놨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가 비정규직의 직접 고용을 포기하고, 도급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무늬만 정규직 전환', '노동정책 후퇴'라고 반발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민간위탁 사업장은 2만 2743곳이며 노동자 19만 5736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7조 9613억 원으로 정부 재정의 1.9% 수준이다.

◇소속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조합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성대 민주노총 경남본부 정책국장은 "경남은 타지역보다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가 많은 편이지만 영세한 사업장에는 비정규직이 즐비하다. 이들 대부분은 불법파견 소속 노동자지만 권리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값싼 임금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조업 노동자들은 도급 노동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보다 이윤을 내는 것에만 몰두한 산업정책이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비정규직 문제는 보호받을 권리조차 앗아갈 때가 잦다"며 "법이 있어도 선언적 문구에 그치고 있다. 비정규직이 생겨난 지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자본의 논리에 노동착취는 여전한 상황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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