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배경 '남명학' 재조명

"올해 여든여덟 살의 나이, 길바닥에 끌려 나올 때부터 미처 제대로 펴지 못했던 그의 오금이 무너지듯 마저 꺾였다. (…) 꼿꼿하게 세운 그의 목은 그나마 수월하게 망나니의 칼을 받아낼 수 있었다."

계해년(1623년) 4월 3일 신시(申時), 멀리 북악산이 보이는 군기시 앞 큰길 한가운데서 일어난 정인홍 참수 장면에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정인홍은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 <진주>, 이강제 지음.
                            ▲ <진주>, 이강제 지음.

이 소설은 1550년대부터 1620년대까지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남명학파를 창시한 조식과 그의 제자 정인홍이 을묘왜변, 정여립의 난, 임진왜란, 정유재란, 인조반정 등의 과정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풀어내고 있다. 유린당하는 백성의 비명과 상소를 올리는 신하의 외침, 왜병에 맞서 내달리는 의병의 함성, 그리고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전회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실제로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 속에는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이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경남에서 남명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재조명한 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다. 책머리에서 작가 이강제는 진주 태생인 자신조차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수십 년을 살았다고 했다.

작가는 실증적인 방법으로 실체를 추적했고 실록을 비롯한 역사서부터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까지 샅샅이 조사해 작품에 녹여냈다고 한다.

문학사상 펴냄. 400쪽.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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