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 화가 특성·작품 한눈에
대중 눈높이 맞춰 이야기로

뭉크, 반 고흐, 세잔부터 피카소, 칸딘스키, 뒤샹까지. 이름은 익숙한데 당최 작품과 매칭이 되지 않는다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제목처럼 방구석에 앉아 낄낄거리며 책을 훑다 보면 어느새 옆자리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이 귤을 까먹고 있을 것이다.

유쾌한 교양 미술서를 자처하는 <방구석 미술관>은 작품이 아닌 화가에 초점을 맞췄다. 19세기 말 표현주의, 인상주의와 20세기 인상주의, 야수주의, 초현실주의 화가 14명을 소개한다.

▲ 〈방구석 미술관〉조원재 지음
▲ 〈방구석 미술관〉조원재 지음

각 화가를 소개하는 첫 장에는 교과서에서, 광고에서, 하다못해 머그컵 디자인으로라도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작품이 크게 걸려 있다. 책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화가들의 성장 과정과 특성, 작품세계 등을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특히 세계적인 화가의 특징을 포착해 별명을 붙인 점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그림 '키스'의 구스타프 클림트는 '테러를 일삼은 희대의 반항아', 자연의 삶을 동경했던 폴 고갱은 '원조 퇴사학교 선배', 20세기가 낳은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선배의 미술을 훔친 도둑놈' 등등.

퇴사학교 선배 폴 고갱의 퇴사 스토리를 들어보자. 그는 소싯적 잘나가는 증권맨이었다. 고갱은 후견인의 도움으로 프랑스 증권사무소에서 일한다. 착실히 회사생활을 하며 결혼도 하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문제(?)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사진가였던 후견인은 고갱에게 일자리뿐 아니라 미술도 소개했다. 고갱은 처음에는 증권맨답게 재테크 수단 정도로 미술을 대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매력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대적으로도 당시 파리에서는 '아마추어 회화 붐'이 일고 있었다. 고도의 교육을 받지 않아도 미술을 할 수 있다는 '근자감'을 심어줬다. 게다가 취미는 장비발 아닌가! 그무렵 튜브 물감까지 출시됐다.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주말에는 화가로 이중생활을 한다. 운 좋게 인상주의 거장 피사로와 세잔 등 귀인을 만나면서 차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러다 1882년 프랑스에 급격한 경기 불황이 닥쳐 고갱이 해고를 당한다.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24시간 전업화가가 된 그는 지금의 명작을 남겼다.

"약 150년 전의 퇴사 선배, 고갱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빛은 무엇이었을까요?…단 한 번 멸망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 그 행위 속에 '진짜 나'가 있는가?…그는 자신의 삶과 작품으로 이런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던 것 아닐까요?"(168쪽)

각 화가가 미술사에 남긴 발자국, 예술인으로서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 등도 빠뜨리지 않았다. 또 화가를 시대별로 배치해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이해를 돕는다.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딱딱한 소재를 딱딱하지 않게 풀어내는 신공은 조원재 작가 이력 덕분이다. 조 작가는 지난 2016년부터 '미술은 누구나 쉽고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는 모토 아래 진행하고 있는 동명 팟캐스트 '방구석 미술관'을 진행하고 있다.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의 입담은 종이 위에서도 화려한 필력으로 이어졌다.

발레리나의 화가로 불리는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작품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이유, 에곤 실레가 19금 드로잉을 그리게 된 이유, 마르크 샤갈의 그림 속 인물이 떠다니는 이유 등을 짚어가다 보면 명화 앞에서 작아지는 어깨를 조금은 펼 수 있겠다.

블랙피쉬 펴냄. 343쪽. 1만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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