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패스트트랙 지정 등
여야 기약도 없이 강경 대치만
유치원 3법 등 민생·경제 뒷전
국민 83% "국회 잘못했다"혹평

국회에 대한 평가에는 항상 '최악'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지만 20대 국회에 대한 국민 평가는 더 야박합니다. 변화와 쇄신에 대한 기대가 더 컸지만 국회는 정당과 기득권 논리에 파묻혀 개혁의 흐름에 역행하고 국민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념 전쟁터에 국민을 끌어들여 여론을 양극화하고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딱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 네 차례에 걸쳐 20대 국회에 대해 평가하고 21대 국회에서 요구되는 쇄신에 대한 기대를 짚어봅니다.

2019년이 끝나고 2020년이 시작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회는 타협과 숙의는 찾아볼 수 없는 '난장판'에 가깝다.

지난 연말 올해 정부 예산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안 등을 놓고 이어진 여야의 극한 대결이 끝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은 새해가 밝자마자 또 거리로 뛰쳐나가 장외투쟁(3일 서울 광화문 집회)을 펼쳤고, 더불어민주당과 나머지 야당은 이에 아랑곳없이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일부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강행할 태세다.

▲ 지난해 4월 29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경수사권과 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이 통과되자 자유한국당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4월 29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경수사권과 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이 통과되자 자유한국당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생·상생은 뒷전 국론 분열만 =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으로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국회는 거의 마비 상태였다. 조 전 장관 내정 한 달 만에 인사청문회가 개최됐을 뿐만 아니라,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주요 국회 일정이 정상 진행되지 않거나 정쟁으로 채워졌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조국 사태' 동안 한국당은 전국적으로 총 13차례 장외집회를 가졌고,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도 대검찰청 앞 촛불집회로 맞불을 놓았다.

여야의 끝도 기약도 없는 대치로 지체되거나 폐기 위기에 놓인 민생·경제 법안은 한둘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이른바 '유치원 3법'과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되는 '데이터 3법', 어린이 교통안전 대책을 담은 일명 '해인이법', 그리고 지방의 숙원이 녹아 있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3월 발의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약 8개월 동안 변변한 토론도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조차 넘지 못한 형편이라 이대로면 20대 국회 내 폐기가 유력하다.

물론 몇몇 단편적 사실만으로 최근 정치권과 언론이 집중 거론하는 '역대 최악의 20대 국회'란 평가에 합류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20대 국회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이끈 주역이었고, 막강한 검찰 권력을 견제할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20년 넘게 진전이 없던 공수처와 다양한 정치세력의 참여가 가능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도화한 주역이었다.

국회는 늘 '역대 최악'이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7대 국회가 끝나가던 2008년 5월 한 언론은 "지난 4년간 국회가 열릴 때마다 여야 의원들 간 몸싸움은 기본이고 국회의장 단상 점거와 철야농성이 줄을 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고 지금 딱 어울릴 평가를 내렸고, 2016년 5월에도 한 언론은 "일하지 않는 국회, 소통과 협력이 없는 역대 최악의 국회란 오명을 쓴 19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20대에는 쇄신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썼다.

20대가 유달리 많은 욕을 먹는 건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7년 5월 국민은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을 맞았다.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가 곧 도래할 거라고, 정치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전과 다른 눈부신 변화가 펼쳐질 것이라고 대다수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 대통령은 예의 그해 5월 10일 국회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며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약속했다.

야당 역시 문 대통령의 천명에 "우리 당(한국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도움되는 일이라면 정파적 입장을 초월하겠다. 과거처럼 이유 없는 국정 발목 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를 지양하겠다"며 "문 대통령이 이 같은 우리 의지를 이해하고 협치와 분권의 시대적 요구를 국정에 잘 반영해주길 바란다"(2017년 5월 12일. 당시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고 화답했음은 물론이다.

2년 반 정도가 흐른 2020년 1월 현재, 결과는 그러나 모두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문 대통령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제안하는 등 나름 노력했지만 협의체는 2018년 11월 단 한 차례 가동 후 1년 넘게 표류 중이다.

현 정부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이 23명에 달하는 것에서 드러나듯, 대통령은 야당을 존중하지 않는 듯 보였고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야권은 또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에 주력하는 인상을 줬다.

◇국민이 매긴 점수 36.9점 = 이번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반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13~14일 뉴스1과 엠브레인이 진행한 현안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20대 국회를 점수로 평가해달라는 물음에 평균 36.9점(100점 만점)을 매겼다. 응답자의 70% 이상이 50점 이하 낮은 점수를 줬고, 80점 이상은 6.2%에 불과했다.

또 20대 국회가 가장 부족했던 점으로는 '여야 협력'(37.8%)이 단연 1위에 꼽혔고, '국민과 소통'(18.5%) '지역현안·민생 돌보기'(16.4%)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10월 22~24일 한국갤럽 조사도 마찬가지다. 응답자들이 20대 국회에 준 평점은 앞서 조사와 다름없는 40점(100점 만점)이었다. '20대 국회가 2016년부터 지금까지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83%가 "잘못했다"고 혹평했다.

국회가 이토록 불신받는 근원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진단은 다양하다. 신속하지 않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의사진행 방해 도구로 전락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관련 논란에서 드러난 제도의 문제, 강성 지지층에 기대어 타협과 양보는 쳐다보지도 않는 각 정치세력과 의원 개개인의 반정치적·이해타산적 행태 등이 우선 첫손에 꼽힌다.

툭하면 국회와 야당에 적대감을 표출하는 문 대통령과 장외집회·삭발·단식 등 '목숨을 건' 강경투쟁에만 정신이 팔린 황교안 한국당 대표로 상징되는 양극단의 정치 체제·문화가 공고히 유지되는 한 협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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