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제사 음복식서 유래
긴 가래떡 무병장수 기원
새 기운과 풍요 비는 의미

설날은 아닌데 떡국이 당겼다.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며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지난해 끝 무렵,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시장 '뚱보식당'에서 김해수 기자와 떡국을 먹었다. 이 식당은 회사 선배의 단골집 중 하나다. 낯선 이들과 바짝 붙어앉아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식당이 좁지만 주인장이 친근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날은 이상하게 주인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가 서빙을, 딸이 음식을 만들었다.

김민지: 아주머니 어디 가셨어요?

백종기(74): 아파서 집에 있어요. 우리가 이 식당을 한 지 25∼26년 되는데 최근에 처음으로 길게(2∼3주 정도) 문을 닫았어요. 집사람이 골절로 병원 신세를 졌거든요. 손님들 전화도 오고 가게 문을 길게 닫으면 안 되겠다 싶어 딸이랑 같이 나왔어요.

김민지: 그렇군요. 우리 회사 선배가 이 식당 단골이에요. 가끔 같이 오곤 했는데, 정작 식당 이름이 왜 '뚱보'인지 물어보진 않았네요.

백종기: 아∼. 예전 식당 주인이 뚱뚱한 편이어서 이름을 뚱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그 식당을 그대로 이어받았죠.

뚱보식당 주인장 딸에게 이곳 떡국의 비법을 물었다. 딸은 "특별한 건 없고 육수의 깊고 진한 맛을 위해 곤어리를 넣는다"고 말했다. 곤어리는 멸칫과의 바닷물고기로 몸의 형태와 길이는 정어리와 비슷하다. 곤어리가 낯설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니 옆에서 밥을 먹던 한 아주머니는 "전라도에서는 젓갈로도 먹는다"고 알려줬다. 그 말을 듣고 떡국 국물을 먹으니 멸치육수보다 깊은 맛이 느껴진다.

해수: 선배네는 떡국 끓일 때 쓰는 육수 재료로 어떤 것을 쓰나요?

민지: 우린 멸치육수를 사용해.

해수: 저흰 닭으로 육수를 내는데, 닭뼈랑 살이랑 함께 고아서 뼈는 발라내고 살은 나중에 고명으로 올려요. 시댁은 소고기로 우려낸 육수로 떡국을 만들더라고요.

▲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시장 뚱보식당 떡국./김민지 기자
▲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시장 뚱보식당 떡국. /김민지 기자

설날이면 떡국을 먹는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됐으며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섣달 그믐(한 해의 마지막 날인 음력 12월 30일)이면 한 해의 풍년을 관장하는 세신에게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과 고기를 올렸고 제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남은 음식을 먹으며 복을 빌었다.

또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양의 기운을 상징한다. 책 <음식잡학사전>을 보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면서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시 찾아오는 날이다. 즉 음의 기운이 물러나고 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날이 바로 설날이다. 가래떡은 양의 기운을 상징한다. 그래서 가래떡을 길고 가늘게 만들어 먹음으로써 식구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봄을 맞아 풍요를 빌었던 것이다'고 나와있다.

민지: 2019년 어떻게 보냈어?

해수: 스펙터클했어요. 아이가 3개월, 6개월마다 다르고 아이가 변화를 겪는 것에 따라 저도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또 남편과 함께 지난 3월 초 베트남에 가서 4개월 동안 살다가 한국에 왔고, 15개월(육아휴직) 쉬다가 복직해 일을 한 지 2∼3개월 됐으니까요. 스펙터클한 한 해였죠.

민지: 난 지난해 1월 문화체육부로 와서 일한 지 딱 1년 됐네. 그전에는 가만히 있으면 뒤떨어지는 것 같고,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참 많이 했는데, 그게 지쳤나 봐. 2019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가는 해, 였던 거 같아.

해수: 흘러가는 대로 보낸 한 해?

민지: 응. 다 지쳐서 에너지가 없는, 의욕도 없고.

해수: '현타(현실 자각 타임)' 왔네요?

민지: 응.(웃음)

해수: 저도 복직하면서 '열심히 하려고 애쓰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챙길게 너무 많은데(일, 육아 등등) 한 군데 욕심내버리면 균형이 깨질 것 같더라고요. 균형을 잘 맞추는데 집중하자고. 근데 생각해보니 나름 균형은 잘 맞았는데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가 않네요. 애기랑 하루 같이 있는 시간이 2시간? 있을까 말까고, 나를 돌아본 시간도 막 있지는 않았거든요. 근질근질하다고 해야 하나? 올해는 살짝 시동을 한번 걸어볼까요?

민지: 가장 기억남은 일이나 행복했던 때는 언제야.

해수: 행복한 순간은 아무래도 애가 커갈 때요. 누워만 있던 애가 걸음마를 떼고, 그런 순간들이 너무 소중한 것 같아요. 그저께였나? 몸이 피곤해서 그냥 있는데 15개월 된 딸이 나를 빤히 보더니 토닥토닥해주는 거 있죠. 너무 놀랐어요. 이런 행복함도 있다는 사실에요.

민지: 난 일적인 면에서 볼 때, 음악 담당하면서 통영국제음악제를 취재했던 게 기억에 남아. 직접 음악회를 보고 취재하면서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더라고. 개인적으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감사해. 엄마, 아빠, 반려견과 같이 등산하고 산책하고 가족과 함께 보낸 그런 시간이 행복했어.

떡국을 먹으며 2019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2020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또 이야기했다.

민지: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는 게 실행이 잘 안 돼. 남들과 비교하면 내가 뒤처져 있는 것 같고, 무언가를 하기엔 늦은 것 같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 올해는 정말 내 페이스대로, 내 속도대로 살고 싶어.

해수: 저는 오히려 결혼 안 하고 자기 삶을 즐기는 친구를 보면 부럽더라고요. 근데 남과 비교하면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올해는 의미 있는 기사, 나 스스로 이건 잘 썼다고 느끼는 그런 기사를 쓰고 싶어요. 가족도 건강하고요.

떡국을 먹고 나오는 길에 뚱보식당 주인장 남편 백종기 씨에게도 물어보았다. 올 한 해 어떤 한 해가 되길 바라느냐고. "별거 없어요.(웃음) 오는 손님 건강하고, 집안 평화롭고 장사도 잘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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