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는 기점 놓고 의견 분분해도
오늘의 '새 씨앗' 튼실한 열매가 되길

나이와 '빚' 그리고 '적'은 항상 내가 어림하는 것보다 넘치게 많다는 것에 소스라친다. 동지 지나고 크리스마스로부터 슬슬 부채질 되는 달갑잖은 해넘이의 번다함 속에 새 달력의 겉장을 뜯으면 그만 또 한 살 나이를 고스란히 먹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겉으로 먹는 헛나이일 뿐 "자고로 '설'이란 음력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떡국을 먹고 난 연후에라야 온전한 새해다"라며 우기는 것이 이제 해넘이 행사처럼 되었다. 다만 달포라도 치산을 늦춰보려는 가소로운 이 셈법은 이룬 것도 없이 쌓여가는 낫살이 무섭기 시작한 때로부터 붙은 습벽이다.

섣달그믐날 자정 보신각 타종으로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이제 국가적 행사로 굳어졌다. 그러나 새해를 정하는 기점을 두고 오랜 시간 끊임없는 소동이 있었다. 과세 논란이 근 100년간이나 이어진 것이다.

시비는 일제의 침탈로 시작됐다. 메이지유신 이후 모든 명절과 기념일을 양력으로 바꾸며 태양력을 도입한 일본은 늑약 이후 대한제국의 음력을 폐지했다. 효율적 식민 지배를 위해 우선 '얼'을 빼려는 시도였다.

'설'을 '구정'이라 부르게 하여 그것이 양력의 '신정'에 비해 낙후된 것으로 여기게 했다. 떡국을 먹는 전통을 밟을 요량으로 방앗간 조업을 훼방하여 떡을 못 만들게 하고 설빔을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리는 만행으로 주권 상실의 처지를 체감케 했다.

어이없는 것은 그 짓이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1949년 국경일을 제정하며 크리스마스까지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유독 '설'은 제외했다. '신정'에만 연휴를 책정한 것이다.

과세 박해라는 이 우스꽝스러운 시책은 박정희로 이어지며 더 엄격해졌다. 장남이 '공무원'이면 봉제사의 헌관인 장자는 꼼짝없이 양력을 쇠고 남은 식솔들은 음력설을 맞는 촌극이 벌어졌다. 외려 당국은 이중과세의 폐해를 없애고 구정 떡쌀 소비를 억제한다며 단속반을 편성하고 방앗간 특별단속에 나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귀성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그걸 총으로 막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마침내 전두환은 1985년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이란 애매한 이름을 붙여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이 명칭을 '설'로 바꾸고 설 추석 3일을 내리 쉬는 명절 연휴로 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설'을 공인한 것이다.

주역을 삼경의 하나로 달달 외던 먹물의 후예들이 벌이는 동지 입춘 논란이 또 다른 하나의 시비다.

음양오행의 운행을 우주 변화의 원리로 삼아 음과 양으로 세상이치를 설명하는 '주역파'들은 '동지'를 새해의 기점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사주명리학파'는 24절기 가운데 '입춘'을 새해의 들머리로 간주한다. 사주의 간지 8자가 지닌 성향과 배치를 보며 그이가 품고 있는 '관계와 욕망의 지도'를 그려내는 그들의 관법으로는 입춘인 2020년 2월 4일이 되어서라야 비로소 경자년(庚子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2020. SF영화에서나 흘겨봤던 저 생경한 숫자의 배열을 머리 맡에 펼쳐놓게 되다니! 그러나 새해 아침은 열렸다. 쥐로 상징되는 경자년의 자(子)는 씨앗이다. 부디 오늘 뿌려진 그 종자가 입춘 지나 싹이 트고 위대한 여름을 거쳐 한가위 무렵엔 빛나고 튼실한 열매로 거두어지길 소망한다.

특히 오랑캐들의 훼방으로 꽉 막힌 남북의 길이 다시 열려 도보다리의 평화가 백두에서 한라까지 펼쳐지길 간절히 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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