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대표하지만 스쳐가는 '문' 장소 목적따라 갖춘 양식 달라
문화유적 지식 차곡차곡 쌓으면 기본 요소·차별점 보는 눈 생겨

"이 기획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다가가기는 쉽지 않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조금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연재를 통해 순간적 흥미 위주의 단편적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고 노력할 것이다."

필자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썼던 글이다. 연재를 진행하는 동안 계속 곱씹었던 부분이다. 선정적이고 파편적인 지식의 전달보다는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문화유산 이해를 위한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 그것을 위해 32회의 지면을 할애했다. 적지 않은 내용이지만 다양한 문화유산을 한 번에 다 다룰 수 없어 건축문화와 불교미술을 주로 다뤘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펴봤던 이슈들을 어떻게 꿰어낼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이템은 문이다. 문은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고,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공간을 대표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집이나 건축은 나만의 혹은 그 목적에 맞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그 공간의 구분은 대부분 담으로 한다. 하지만, 담장으로만 공간을 구분하면 드나들 수가 없으니 문을 만든다.

▲ 왼쪽의 솟을대문은 사랑채로 통하고, 오른쪽 평대문은 안채로 통한다. 사랑채 쪽 문은 초양문(初陽門), 안채쪽은 함광문(含光門)이다. 초양문은 처음 나타나는 양의 기운, 왕을 말한다. 함광은 빛을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머금고 있는 상황이다. 왕비의 덕을 표현한 말이다.
▲ 왼쪽의 솟을대문은 사랑채로 통하고, 오른쪽 평대문은 안채로 통한다. 사랑채 쪽 문은 초양문(初陽門), 안채쪽은 함광문(含光門)이다. 초양문은 처음 나타나는 양의 기운, 왕을 말한다. 함광은 빛을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머금고 있는 상황이다. 왕비의 덕을 표현한 말이다.

◇살림집 = 먼저 살림집의 경우이다. 살림집은 담장의 한 곳을 비운 다음 기둥을 세우고 문을 만들어 넣는다. 간단하게는 비우기만 해도 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그 공간을 막을 필요가 생긴다. 드나들기도 해야 하지만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정감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변형이 생긴다. 우선 담장보다 문을 크게 만드는 경우다. 솟을대문이라 한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가마를 타고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지붕은 담장과 이어지다 보니 담장과 같은 맞배지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규모는 기둥 두 개 사이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한 칸이다.

솟을대문이 있으면 담장과 같은 높이로 만든 문도 있을 것이다. 평대문이다. 격식을 갖춘 집에서는 대문을 지나 다시 사랑채와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별도로 만들기도 했다. 건천궁을 보자. 정면에서는 솟을대문 하나만 있지만 그 문을 들어서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다시 문이 하나씩 있다. 문의 형태가 다르다. 다시 나타나는 솟을대문은 사랑채로 향하는 문이고 평대문은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다. 앞서 말했듯 솟을대문의 등장은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남녀 혹은 공간의 성격이 다름을 나타내는 용도로도 사용됐다.

▲ 광화문(사진)과 돈화문. 궁궐의 주인인 군주의 덕이 세상을 밝히는 모습을 '화(化)'라는 말로 표현했다. 빛으로 환하게(光) 혹은 돈독하게(敦) 세상을 이끄는 모습이다.
▲ 광화문(사진)과 돈화문. 궁궐의 주인인 군주의 덕이 세상을 밝히는 모습을 '화(化)'라는 말로 표현했다. 빛으로 환하게(光) 혹은 돈독하게(敦) 세상을 이끄는 모습이다.
▲ 광화문과 돈화문(사진). 궁궐의 주인인 군주의 덕이 세상을 밝히는 모습을 '화(化)'라는 말로 표현했다. 빛으로 환하게(光) 혹은 돈독하게(敦) 세상을 이끄는 모습이다.
▲ 광화문과 돈화문(사진). 궁궐의 주인인 군주의 덕이 세상을 밝히는 모습을 '화(化)'라는 말로 표현했다. 빛으로 환하게(光) 혹은 돈독하게(敦) 세상을 이끄는 모습이다.

◇궁궐 = 궁궐의 문을 보자. 살림집과는 당연히 규모를 달리해야 했다. 규모를 정하는 동아시아 질서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왕은 3칸짜리 문을 사용할 수 있었고 황제는 5칸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나라 궁궐의 문은 3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단순히 칸 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상징하다 보니 단층이 아니라 2층으로 만들어 일반 살림집과 차별화했다.

모든 문은 남쪽 문이 중심이다.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을 보자. 1층을 돌로 만들어 이곳이 아주 중요한 곳임을 강조했다. 그래도 만드는 원리는 같다. 왕의 공간이니 3칸 건물이 필요했고, 구멍 세 개를 뚫어 이 문은 정면 3칸임을 나타냈다. 그리고 2층에 아래쪽을 감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지붕도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잘 보이지 않는 우진각 지붕을 설치했다. 원래 우진각 지붕을 만드는 데는 많은 목재와 기술이 필요해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건물의 지붕으로 사용했다. 자금성 태화전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궁궐의 정문에 주로 사용했다.

그렇다고 모든 궁궐의 정문이 이렇게 생긴 것은 아니다. 창덕궁 돈화문을 보자. 역시 2층 건물이고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돈화문의 1층은 광화문처럼 돌로 만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심 궁궐인 경복궁과 격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눈썰미 좋은 분은 광화문과 돈화문을 보면서 뭔가 다른 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은 세 칸이지만 전체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이다. 슬쩍 황제국의 요소를 채용하고 있다. 조선은 그냥 일반적인 제후국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바깥쪽 두 칸은 문이 아니라 벽을 만들어서 3칸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했다.

▲ 쌍계사 일주문(사진)과 범어사 일주문. 쌍계사 일주문은 전형적인 모습이고 범어사는 전형에서 파생된 멋진 이형이다. 이 문 뒤 불국토가 펼쳐진다는 것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 쌍계사 일주문(사진)과 범어사 일주문. 쌍계사 일주문은 전형적인 모습이고 범어사는 전형에서 파생된 멋진 이형이다. 이 문 뒤 불국토가 펼쳐진다는 것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절 = 절로 가보자. 절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문은 일주문이다. 궁궐의 문을 보면 규모가 크다 보니 명칭은 문이지만 실제로 하나의 집을 만들어 문처럼 이용하고 있다. 돈화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그리고 2층 건물이다. 그런데 절집은 조금 다르다. 기둥만 덜렁 두 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위에 지붕을 얹었다. 이 기둥열이 한 줄로 이어진다고 해서 일주문이라 부른다. 살림집의 정문도 일주문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문은 절집과는 달리 담장에 기대어 있어 기둥 두 개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절집은 담장이 없다. 덩그러니 기둥만 가지고 무거운 지붕을 받치는 것이다. 정상적인 구조는 아니다. 일주문에 필요한 것은 이 문을 지나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일상을 초월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이다. 그래서 비상식적인 구조의 문을 만들었다. 이런 의도에서 작은 문임에도 화려한 다포에 단청을 하고 팔작지붕을 올렸다. 쌍계사 일주문이 대표적이다.

이런 독특한 시도의 다른 한 예가 범어사 일주문이다. 정면 3칸이다. 궁궐급이다. 하지만 이 큰 구조물을 역시 한 줄의 기둥으로 만들었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겠지만 돌로 기둥을 만들어 넣었다. 광화문이 떠오른다. 범어사 일주문은 광화문에 비해서 크기는 작지만 들어간 생각은 광화문 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붕은 팔작지붕이 아니다. 한 칸이 아니라 세 칸으로 늘리다 보니 팔작지붕을 얹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우진각 지붕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러면 거의 광화문 급이 되어버린다. 살짝 위계를 낮추는 방법을 택한 것이 맞배지붕일 수 있다. 그럼에도 공포는 화려하게 나타내 기본적 일주문 구성원리를 따르고 있다. 이런 아이디어가 독창적으로 드러나고 있어서 범어사 일주문은 보물 1461호이다.

거꾸로 보면 이제 문만 보고도 그 문이 어떤 건축군에 속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 담장이 없이 문만 덜렁 서 있는 경우는 대부분 절집일 것이다. 궁궐 급에서는 2층 문루를 사용한다. 만약 문이 3개 있다면 한국에 있는 건물일 가능성이 크고 다섯 개라면 중국에 있는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이다.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에는 출입구가 몇 개 있을까? 솟을대문이 있는 집은 양반집일 것이고 한 집에 솟을대문과 평대문이 있고, 내가 남자라면 누가 옆에서 말하지 않아도 솟을대문으로 들어가 사랑채로 가면 된다.

▲ 쌍계사 일주문과 범어사 일주문(사진). 쌍계사 일주문은 전형적인 모습이고 범어사는 전형에서 파생된 멋진 이형이다. 이 문 뒤 불국토가 펼쳐진다는 것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 쌍계사 일주문과 범어사 일주문(사진). 쌍계사 일주문은 전형적인 모습이고 범어사는 전형에서 파생된 멋진 이형이다. 이 문 뒤 불국토가 펼쳐진다는 것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나머지 요소들도 마찬가지이다. 목조건축을 만드는 기본 원칙은 비슷하고 그 구성요소는 다양하다. 마치 장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우선 각 말들이 움직이는 방법은 기본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환경에서 최적의 이동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배움이 이런 것 같다. 수영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숨이 차서 25m를 가기도 어렵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트인다.

이번 연재는 이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필요한 결과물을 얻는지, 그리고 이런 의도를 읽어내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독자 여러분도 꾸준히 여러 유적을 살펴보면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다 보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으로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재를 끝까지 지원해 주신 많은 분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필자의 본업도 문화유산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일 년 반 동안 이 연재의 시작을 독려해 주시고 연재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지면에 일일이 이름을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정말 수많은 인연이 이 글 속에 녹아 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고 연재를 통해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된 이 모든 상황에 감사드린다. 모든 이들에게 차분한 연말과 즐거운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끝〉

※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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