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온통 은유 덩어리여서 시인의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몇 번이고 되씹어보면 희미하게 뭔가 보이기도 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의 단어에도 여러 향기가 배어 있고 하나의 문장에도 많은 목소리가 스며 있다. 이게 어쩌면 시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낯선 발신인 이름인데 수신인에 내 이름을 적시한 우편물이 며칠 전에 도착했다. 봉투를 뜯어보니 시집이 한 권 들었다. 이주언. 시인의 이름을 미안하게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된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는 시 '슬픔이라는 검은 나비'에서 "편지 대신/ 검은 나비가 봉인되어 온 적 있다// 어느 공중을 저어 온 날개인가, 궁금했다"고 했다. 시에서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그의 이름에서 느끼는 궁금증과 비슷한 상황이라 상당히 당황스럽다. 그의 궁금증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 < 검은 나비를 봉인하다> 이주언 지음.
▲ < 검은 나비를 봉인하다> 이주언 지음.

"그는 오래 봉인되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생(生)이라는 봉투 속에서 검은 비늘을 자꾸 떨어뜨린다고 했다/ 이제 그의 영혼은 유분과 수분을 저장할 수 없습니다, 의사의 진단은 간명했다/ 속을 들여다볼수록 각질이 일었다// 검은 나비가 묘지의 입구에서 날개를 접자…." 뭔가 느낌이 왔다. 상상의 방향을 제시하는 뭔가 단서라도 발견한 것 같다. 몇 번이고 되뇌자 '검은 나비'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시집 차례를 보니 '검은 나비에게'란 제목이 눈에 띈다. 이 시를 보면 뭔가 더 확실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천문을 엿보는 즐거움/ 검은 나비 문신을 은밀히 감춰 두었어// 때론 박박 문질러 당신을 지우고/ 다른 운명을 그려 넣고 싶을 때가 있지만…." 박박 문질러 지워버리고 싶은 운명, 시인은 검은 나비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의 검은 나비는 또 다른 시들을 통해 채집해야 할 것 같다.

한국문연. 126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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